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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없는 전력시장, 전기위원회 독립은 가능한가[이유범의 에코&에너지]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28 06:00

수정 2026.03.28 15:34

이재명 정부 에너지 거버넌스의 과제
난립하는 법안, 겸임하는 심판, 코드로 채운 위원회
제미나이.
제미나이.

[파이낸셜뉴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전기위원회 독립 강화를 핵심 에너지 의제로 내세웠다. 전기요금 결정권을 정치로부터 분리하고, 비용 원칙에 따라 독립 기관이 요금을 의결하는 구조로의 전환이 목표다. 그러나 선언은 거창하고 장벽은 높다. 입법 과제, 이해충돌 구조가 전기위원회 독립의 발목을 잡고 있고,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라는 정치적 공약은 오히려 전기위원회 독립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심의 대행'에 불과한 전기위원회

전기위원회는 전력산업의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 전기사용자 권익 보호, 전기요금 심의·의결 등을 담당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그러나 실질적 권한 측면에서는 수십 년째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전기요금은 한전이 주무 부처에 인상·인하를 신청하면 전기위원회가 이를 심의하는 구조다. 문제는 심의 결과가 실제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행 구조가 사실상 심의 대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전기위원회에 실질적인 의결 권한을 부여하고 물가 당국의 이중 개입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전담 컨트롤타워로 신설하고, 전기위원회에 '객관적 원가 검증을 기반으로 한 전기요금 결정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기위원회 산하에 전력감독원을 신설해 시장 공정성 감시, 전력망 안정성 감독, 원가 검증 등 상시적 감독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2025년 12월에는 인적 쇄신도 단행됐다. 전기공학·에너지·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5명이 신규 위촉됐으며,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들이 전기위원회 독립성 강화에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해외 비교도 독립 규제 기관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미국의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각종 사업 인허가와 전력시장 감시·제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며, 영국의 에너지규제청(Ofgem)도 유사한 역할을 맡고 있다. 정부의 전력감독원 설치 목표 시점은 2027년 상반기다.

새울원자력발전소 모습. 연합뉴스
새울원자력발전소 모습. 연합뉴스

입법, 이해충돌, 인사 논란

전기위원회 독립이 선언만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세 가지 구조적 장벽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다. 우선은 입법이다. 여당 내에서만 이미 세 가지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경쟁 중이다. 국무총리 산하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하자는 안, 심의 권한을 심의·의결로 확대하자는 안, 대통령 소속으로 두자는 안이 각각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야당도 에너지요금위원회 신설이라는 별도 안을 제출한 상태다. 여야 모두 독립 규제기관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어느 설계도가 통과되느냐에 따라 전기위원회의 위상과 실질 권한이 크게 달라진다. 이해충돌 구조도 도마에 몰랐다. 전기사업법 제43조에 따르면 전력시장운영규칙은 시장 운영자인 전력거래소가 직접 제정한다. 선수가 경기 규칙을 쓰는 구조다. 여기에 전기위원회 상임위원을 기후에너지환경부 에너지정책실장이 겸임하고 있어, 규제 대상 부처의 현직 고위직이 독립 기관의 위원을 겸하는 모순이 그대로 남아 있다. FERC나 Ofgem 같은 해외 독립 규제기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이다. 인사 논란도 제기돼고 있다. 2025년 12월 단행된 신규 위원 위촉에서 30년 경력의 탈원전 활동가, 대통령 형사재판 변호인 출신 법조인, 여권 공천관리위원회 활동 이력의 변호사 등이 포함되면서 '코드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며 정치적 연계가 뚜렷한 인사를 앉히는 자기모순이, 전기위원회 독립의 신뢰성을 처음부터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내 오피스텔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서울시내 오피스텔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전기위원회 독립 강화에 역행하는 '지역별 차등요금제 '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또 하나의 핵심 의제,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LMP)는 전기위원회 독립 강화와 논리적으로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발전소 밀집 지역의 요금을 낮추고 소비 집중 지역의 요금을 높이는 이 제도는 표면상 비용을 반영한 가격 신호처럼 보이지만, 실제 설계를 들여다보면 균형발전·에너지 전환·발전소 소재 지역 보상이라는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문제는 이 차등요금제가 대통령 선거 공약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요금의 틀(권역 구분, 인하·인상 방향)이 공약으로 먼저 확정된 상태에서 전기위원회가 세부 의결만 담당하게 된다면, 독립 규제기관은 정치적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특히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당초 2025년 시행 예정이었으나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입이 무산됐다. 수도권 요금 인상에 따른 표심 이탈을 우려한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미국 FERC의 LMP는 실시간 송전 혼잡 비용을 알고리즘으로 계산해 지역별 가격을 도출한다. 정치적 협상이 아닌 실제 물리적 비용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독립 규제기관이 운영하는 지역 차등 요금과 한국이 추진하는 공약형 차등요금제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부 전문가들은 초기 방안이었던 전국을 수도권·비수도권·제주권 3개 권역으로만 나눠 획일적인 요금제를 적용하는 방식 자체가 비용 기반이 아닌 정치적 경계 획정이라고 지적한다.

전기위원회 독립 강화와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요금 결정권'에 대해 정반대의 논리를 내장하고 있다. 독립 강화는 요금이 비용 원칙에 따라 정치로부터 절연된 전문기관이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차등요금제는 국가 균형발전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정책 목표를 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출발했다.

두 정책이 논리적으로 완전히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에는 명백한 내적 긴장이 존재한다. 진정한 전기위원회 독립이 실현되려면, 차등요금제의 설계 원칙을 '비용 기반이냐 정책 목표 기반이냐'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을 정하는 주체가 청와대나 부처가 아니라 독립 기관이 될 때, 비로소 두 정책은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27년 상반기로 예정된 전력감독원 설치가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그리고 전기위원회가 정치의 추인 기관이 아닌 진정한 규제 기관으로 자리 잡도록 이재명 정부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후속 조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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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