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 나비효과? 현대엘리베이터 그날 배당: 2화
[파이낸셜뉴스]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배당 보고 샀다가 물렸는데 어떻게 하죠?" 얼마전 한 지인이 물었다. 2월 23일 최고가 기준 11만3000원을 찍었던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8만7000원 수준으로 고점대비 약 23%가 빠져있었다. 필자라고 딱히 주식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배당금 받으면서 버티다 보면 언젠가 오르지 않을까요?"라고 하나마나한 위로를 해줬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2월 10일 공시를 통해 1주당 1만201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고 알렸다. 배당률은 12.1%로 예적금 금리(3~4%)와 비교해 최대 4배 가량 높았다.
배당기준일은 2월 28일로, 배당을 받기위해서는 이틀 전인 2월 26일까지 주식을 들고 있어야 했다. 주식 매수 버튼을 눌러도 실제 결제는 이틀 뒤에 체결되는 우리 증시 시스템 때문이다. 공시일 기준 현대엘리베이터의 종가는 10만4100원이었다.
시장에서는 폭탄배당에 대한 소문이 돌면서 공시 전부터 주가가 꾸준히 올랐다. 8만원 후반대였던 주가는 10만원을 찍고, 공시 후 11만원을 넘어섰다. 배당금을 받을 경우 15.4%의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똑똑한 투자자들은 배당금을 받는 대신 주식을 팔아 차익을 챙겼다. 국내 주식은 시세차익에 대한 세금이 '0'원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배당금을 받는 것이 확정된 다음날인 2월 27일부터 주식 가격이 빠져야했지만 스마트머니의 움직임으로 인해 배당락일 전에 주식이 먼저 빠졌다.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은 24일부터 3일 동안 무려 1만1200원(11만1700원→10만500원)이 빠졌다. 그 이후에도 배당을 확정한 개미들의 매도세가 붙으면서 주가는 배당락 약 일주일 뒤인 3월 4일 8만1600원까지 곤두박질 쳤다. 고점대비 약 27%의 큰 하락률이었다. 12% 배당을 받게될 일부 개미들은 배당보다 더 큰 주가 하락에 '멘붕'이 오기도 했을 것이다.
대기업 싸움에 어부지리한 사모펀드
스위스 엘리베이터 회사 쉰들러는 현대그룹 경영진을 상대로 한 주주 대표 소송에서 2023년 3월 승소했다. 대법원은 현대그룹 경영진이 2800억원(원금 1700억원+이자 1100억원)을 현대엘리베이터에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 직후 자금이 없었던 경영진은 자신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담보로 12% 고리로 사채 성격의 대출(브릿지 론)을 받아 쉰들러에 배상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브릿지 론 12%에 대한 이자가 큰 고민이었다. 막대한 이자 비용에 대해 걱정할 때 한 사모펀드가 등장한다. 'H&Q코리아파트너스'는 경영진의 개인 회사이자 그룹의 실질적 지주사인 현대홀딩스컴퍼니에 3100억원을 투자한다. 이 돈으로 경영진은 브릿지 론을 갚는다. 이때 경영진 개인의 빚이 회사(현대홀딩스컴퍼니)의 부채로 바뀌게 된다. 돈의 흐름을 정리하면 '사모펀드→브릿지 론→쉰들러'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자금을 댄 사모펀드 H&Q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H&Q는 투자금 3100억원을 교환사채(EB), 전환사채(CB), 상환전환우선주(RCPS)라는 복잡한 형태로 분산투자했다. 또 연 10%대의 높은 이자도 확정 받았다.
H&Q는 3100억원 중 800억원(교환사채)을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으로 바꾼 뒤 블록딜로 1500억원을 챙겼다. 빌려준 투자금을 쌀 때 주식으로 바꿔, 비쌀 때 팔아 거의 2배 가까운 수익을 거둔 것이다.
그럼에도 경영진(현대홀딩스컴퍼니)측은 H&Q에 갚아야 할 돈 2300억원이 남았다. 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는 2025년 9월 연지동 사옥을 매각해 4500억원을 확보한다. 이 돈을 바탕으로 폭탄배당을 하고, 다시 그 배당금으로 H&Q에 빚을 갚은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2월 결산 배당(주당 1만2010원)으로 사용한 배당금은 총 4424억원이다. 사옥매각 대금 4500억원과 거의 일치한다. 현대엘리베이터 최대 주주인 현대홀딩스컴퍼니는 1370억원의 배당금을 받아 이를 H&Q에 돌려준다. 약 1000억원의 잔여 채무는 경영권 분쟁 종료 후 시중 은행등으로부터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모두 청산하게 된다. H&Q의 고금리 대출을 낮은 대출로 바꿔(리파이낸싱) 모두 갚아 버린 것이다. H&Q는 3100억원을 투자해 원금의 약 1.5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결산 배당을 진행하며 최대주주가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묘수'를 부린다. 배당금을 지급할 때 '이익잉여금'이 아닌 '자본준비금'을 헐어서 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자본준비금을 활용한 '감액 배당'은 주주들이 처음 투자한 원금을 사용하는 방식이라 배당세가 아예 붙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 배당으로 줄 경우 최대주주의 최고세율은 49.5%에 달한다.
이 방법으로 총 4424억원의 배당 중 약 70%는 세금을 0원으로 줄였다. 나머지 30%만 회사가 번 돈으로 정상배당해 배당세(15.4%)가 붙었다. 사옥 매각대금도 '이익'으로 보고 배당하면 세금을 내야해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자본준비금을 먼저 꺼내서 주주들에게 세금 없이 지급했다. 다시 말해 사옥 판 돈으로 회사 금고를 채우고, 세금을 안 내도 되는 다른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주들에게 준 것이다.
굵직한 자금의 흐름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사옥 매각 대금 4500억원 + 쉰들러 배상금 2800억원 → 현대엘리베이터 금고 → 주주 배당 4424억원 → 경영진 지주사로 유입 1370억원 → 사모펀드 빚 청산.
쉰들러와 폭탄배당의 연결고리
쉰들러는 오너가 회사를 사유화한다며 현대엘리베이터를 공격했고, 주주대표 소송을 진행해 승소했다. 2800억원의 배상 책임을 지게된 오너는 빚을 내어 회사에 그 돈을 갚았다. 하지만 이자 부담이 컸던 오너는 사모 펀드(H&Q)에게 투자금을 받아 다시 그 빚을 갚았다. 그 과정에서 오너는 지주회사의 배당 정책(비과세)을 활용해 사모 펀드에 빚을 갚고 지배력도 방어했다. 배당을 위해 부족한 자금은 현대엘리베이터 사옥을 매각해 충당했다.
쉰들러는 이와 별도로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도 3000억원대 국제투자분쟁(ISDS)을 제기했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유상증자를 여러차례 단행했음에도 이를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정부는 ISDS 본안 소송에서 쉰들러에 완전 승소했다. 한때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였던 쉰들러는 지분 0.01%만 남기고 손을 뗐다.
경영진은 회사의 배당금을 활용해 자신의 빚을 갚고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지킬 수 있었다. 사모펀드인 H&Q 파트너스 역시 위험에 빠진 재벌을 구해주고, 원금의 1.5배에 달하는 수익과 짭짤한 이자 수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엘리베이터에 최근 투자한 소액주주들 역시 회사가 억지로(?) 곳간을 연 덕분에 12%에 달하는 고배당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현대엘리베이터를 보유한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손실을 봤다. 글로벌 대기업인 쉰들러도 손을 뗀 마당에 개미들의 눈물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어쩌면 쉰들러 사건은 과거 후진적인 자본시장을 유지했던 대가를 현재 우리 정부가 ISDS라는 형태로 돌려 받고 있는 하나의 장면인지도 모른다. 삼성물산 부당 승계에 반발한 엘릿엇, 현대그룹의 부당한 유상증자를 고발한 쉰들러가 그 예다. 이 과정에서 법률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피해를 최소화 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쉰들러의 창 김앤장, 법무부의 방패 태평양
법무부가 3월 15일 배포한 '한국 정부, 3250억원 쉰들러 ISDS 전부 승소' 8쪽짜리 보도자료 2페이지에는 ISDS 소송을 둘러싼 법률전의 대리인들이 등장한다. 쉰들러는 대리 로펌으로 국내는 '김앤장', 국외는 '퀸 엠먀뉴엘 어퀀트 앤 설리번'을 선임했다. 법무부는 정부측 대리인으로 국내와 국외 각각 '태평양'과 '데버보이스 앤 플림턴'을 선임했다.
조아라 법무부 국제법무국 국제투자분쟁과장은 브리핑을 진행하며 "한국 정부가 지출한 소송비용이 쉰들러 측 비용보다 수십억 원이나 적은 점을 고려하여, (중재판정부가) 한국 정부의 소송비용이 합리적이라고 명시했다"며 "이는 정부의 96억원 상당 소송비용의 환수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바꿔말하면 쉰들러가 ISDS 소송을 위해 쏟아부은 소송비용만 최소 110억원 이상이라는 뜻이다. 국내 로펌 업계에서는 1위보다 2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압도적인 실력과 규모로 글로벌 소송과 대형 소송을 독식하는 김앤장은 고정 값이기 때문에 김앤장을 상대할 2위 로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나 해외 기업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하는 ISDS 소송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1순위 로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많은 경우 김앤장이다.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로펌 입장에서는 ISDS에서 해외 기업을 대리할 경우 우리 정부의 국익에 반하는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2006년 한 대형 로펌의 임성우 변호사 역시 김앤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김앤장은 리딩 로펌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변호사 윤리를 저버리고 법률가 집단이라기보다 장사꾼 집단'이라는 취지였다. 이후 김앤장은 대한변호사협회에 임 변호사에 대한 진정서를 냈고, 임 변호사 역시 대한변협에 진정서를 내며 맞섰다. 임 변호사는 "김앤장이 변호사법의 근간에 도전하는 조직 형태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앤장은 임 변호사의 비방 행위가 명예 훼손 내지 영업 방해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중재를 맡은 대한변협은 이에 대해 '불문종결' 결정을 내렸다. 한 마디로 김앤장의 조직 형태에 대해 가타부타 결론 없이 불문에 부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임종인·김화식 저자의 책 '법률사무소 김앤장'에 자세히 나와있다.
쉰들러 소송을 승소로 이끈 태평양의 이준기 대표변호사는 “론스타 ISDS 소송에 이어 이번 쉰들러 소송에서 국가의 리스크 관리에 기여한 것은 우리 법인의 복합위기 대응 역량을 다시금 보여준 것”이라며 “정부는 물론 기업들에 있어서도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대표 로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앤장을 상대로 거둔 의미있는 1승인 셈이다.
■'이환주의 시선'은 특정 이슈를 기존의 단순 기사 형식을 넘어 기자수첩, 내러티브 등 다양한 형태로 풀어나가는 온라인 전용 코너입니다. 다음화에서는 우리 증시 개미의 투자 잔혹사를 유상증자와 함께 살펴볼 예정입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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