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 금리 마이너스' 시대의 현금 보관 딜레마
물가에 녹아내린 5천만 원… '안전 자산'의 비극적 착시
인플레이션을 전가하다… 20억 생태계가 구축한 자본의 방벽
차익 실현에도 비중 41.5%… 투자의 대가가 선택한 '자산의 방주'
버핏 "차익 실현 후회"... 차후 대량 매수 가능성 시사
가라앉는 예금선인가… 화폐 가치 하락 시대의 서늘한 셈법
물가에 녹아내린 5천만 원… '안전 자산'의 비극적 착시
인플레이션을 전가하다… 20억 생태계가 구축한 자본의 방벽
차익 실현에도 비중 41.5%… 투자의 대가가 선택한 '자산의 방주'
버핏 "차익 실현 후회"... 차후 대량 매수 가능성 시사
가라앉는 예금선인가… 화폐 가치 하락 시대의 서늘한 셈법
[파이낸셜뉴스] 만기 도래한 5천만 원의 예금 통장을 두고 3040 부부의 거실에서 팽팽한 의견 대립이 교차한다.
한쪽은 원금 손실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 연 3%대 시중은행 정기예금에 다시 돈을 묶어두려 하고, 다른 한쪽은 그 자본을 글로벌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이자 독보적인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AAPL)'에 집중적으로 투입해 자산의 구조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맞선다.
과거 고금리 시대에는 5000만 원을 은행에 예치하는 것이 자산을 지키는 가장 견고한 방어막이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상시화된 현재, 이 대립은 단순히 보수적 투자와 공격적 투자의 성향 차이를 넘어선다. 은행의 이자 영수증 이면에 숨겨진 '실질 금리 마이너스'의 덫과, 강력한 팬덤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빅테크의 냉혹한 기회비용 싸움인 것이다.
■ 세후 2%의 배신… '원금 보장'이라는 비극적 착시
은행 정기예금을 '안전 자산'으로 맹신하는 이들의 가장 큰 오류는 명목 금리와 실질 금리의 차이를 간과한다는 점이다. 현재 시중은행의 주요 정기예금 금리는 연 3.5% 안팎에 머물고 있다. 5천만 원을 1년간 예치 했을 때 발생하는 명목 이자는 약 175만 원이지만, 여기에 이자소득세(15.4%)를 제외하면 실제 손에 쥐는 세후 이자는 148만 원 남짓으로 줄어든다.
실질 이자율이 2%대 후반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문제는 물가 상승률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대를 횡보하고 체감 생활 물가는 이를 훨씬 상회하는 상황에서, 세후 2%대의 이자 수익은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에 역부족이다. 결국 5천만 원이라는 거대한 자본을 1년 동안 은행에 묶어두는 행위는 원금의 숫자를 지켜낼 수는 있을지언정, 실질적인 '화폐의 구매력'은 확정적으로 깎여나가는 비극적 착시를 낳는다.
■ 20억 명 갇힌 생태계… 애플의 무기는 '가격 결정력'
반면, 이 5천만 원을 애플에 투입하자는 주장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이윤 창출 구조와 '생태계 록인(Lock-in)' 효과에 기인한다.
애플은 단순한 IT 기기 제조사가 아니다. 전 세계 20억 대 이상의 활성 기기를 바탕으로 한 번 진입하면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한 종교에 가까운 기업이다.
물가 상승은 일반 기업에게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애플은 아이폰 가격이나 앱스토어 수수료, 구독 서비스 요금을 인상함으로써 그 부담을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할 수 있는 막강한 '가격 결정력'을 지녔다.
5000만 원을 은행에 예치하여 화폐 가치 하락의 직격탄을 맞는 대신, 인플레이션을 자신들의 이익으로 치환할 수 있는 글로벌 1등 생태계의 지분을 확보해 자산의 실질 가치를 보존하는 전략이다.
■ 버핏의 확신… "막대한 차익 실현 후에도 포트폴리오 1위"
이러한 기회비용의 셈법은 가치투자의 대명사 워런 버핏의 포트폴리오가 완벽하게 증명한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최신 공시 자료에 따르면, 버핏은 최근 현금 확보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애플 주식 일부를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실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체 포트폴리오의 41.5%에 달하는 약 1500억 달러(한화 약 200조 원)를 애플 한 종목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 뿐만 아니다. 버핏은 최근 CNBC과의 인터뷰에서 버크셔가 보유한 애플 주식을 너무 일찍 팔았다고 밝히며 향후 대량으로 추가 매수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버핏은 "애플이 최대 보유 종목인 것은 매우 만족스럽다"면서도 "다만 다른 모든 종목을 합친 것과 맞먹을 만큼 비중이 커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고 과거 지분 매각 배경을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형 증권사의 한 리서치 센터장은 "현금 보유가 가장 확실한 손실을 확정 짓는 인플레이션 시대에, 애플처럼 독점적 가격 결정력을 지닌 기업의 주식은 사실상 현금을 대체하는 최고의 우량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버핏이 자산 배분 조절 후에도 2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본을 애플에 남겨둔 것은, 1등 빅테크 기업이 가진 압도적인 자본 방어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데이터"라고 진단했다.
■ 가라앉는 예금선(船)인가, 파도를 넘는 1등 주식인가
5000만원의 예금 만기 영수증은 이제 3040 세대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눈앞의 원금 보장을 위해 서서히 가라앉는 배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자본 증식의 항로로 갈아탈 것인가.
시장의 변동성은 두렵지만, 물가 상승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갉아먹히는 은행 계좌의 실질 가치는 두려움을 넘어선 확정적 빈곤을 예고하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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