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 비축 물량 적어 가격 급등
보조금 쏟아부어도 한계 직면
인도, LPG 대안 인덕션 '품귀'
베트남은 에탄올 혼합유 보급
인니선 전기차 전환 고민 늘어
현지진출 韓기업도 경영 비상
#2. "현재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휘발유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주로 출퇴근 때만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액화천연가스(LPG) 문제는 더 심각해요. LPG는 주방의 주요 연료인데 공급이 거의 되지 않고 있어 정말 아껴 쓰고 있습니다.(인도 뉴델리 거주 30대 직장인 쉴라씨)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뉴델리(인도)·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준석 특파원·부 튀 티엔 통신원·프라갸 아와사티 통신원·아울리아 마울리다 함다니 통신원】이란 전쟁의 여파가 동남아·인도 등 신흥국 경제부터 뒤흔들고 있다. 이들 신흥국들은 경제 강국인 주요국들보다 유류 비축 물량이 적은 탓에 수급 부족과 가격 급등에 따른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에 더해 유가 상승으로 운송·물류비까지 오르면서 생활 물가도 급등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우선 소비세 절감을 비롯한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급에 나서는 등 과감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 수급 부족 타개를 위해 러시아를 비롯한 원유 수입처 다변화와 에탄올 혼합유 도입을 비롯한 석유 의존도 낮추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신흥국들의 경제 규모상 이미 이같은 여력이 곧 한계에 달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남아·인도 지역의 신흥국들이 이란전쟁에 따른 '비대칭적 충격(Asymmetric Shock)'의 첫번째 피해국이 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기타 고피나스 전 부총재는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 식량 가격 상승, 그리고 긴축된 금융 조건이 동시에 닥치면서 동남아·인도 지역을 포함한 많은 신흥국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30일 본지가 찾은 인도 뉴델리, 베트남 하노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주유소 일대는 주유를 위해 대기하는 인파로 인산인해였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정부 개입으로 휘발유 값이 변동 없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휘발유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것을 소비자들도 알고 있었다.
■주방서 많이 쓰는 LPG 수급 불안정에 식당들 '휴업'
이날 인도 뉴델리 시내 한 주유소에서 만난 40대 남성 디네쉬씨는 "최근 정부가 휘발유와 경유의 소비세를 인하해 가격을 안정화시켰지만,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여전히 높다"며 "현재는 구매 제한이 없다 보니 앞으로 가격이 오를 것에 대비해 휘발유와 경유를 미리 사두는 경우가 주변에도 흔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란전쟁이 터진 지난 2월 28일 94.72루피(1509원)를 기록한 뉴델리 시내 휘발유 가격은 연료보조금과 소비세 인하 덕에 한달이 지난 3월 31일에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LPG 수급 상황은 심상치 않다. 인도는 미국에 이어 LPG 사용량 세계 2위 국가로, 수요의 9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이날 시내의 식당들은 LPG 공급이 원활치 않아 무기한 휴업에 돌입한 곳도 많이 생기고 있다. 실제 정오에서 오후 1시 사이에 찾은 식당가에는 다수의 식당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한 상인은 "저번 주부터 LPG를 구입하지 못한 식당 주인들이 하나 둘씩 식당문을 닫더니 지금은 10개가 넘는 식당이 휴업 상태"라며 "일부 식당에서는 튀김을 비롯한 기름을 많이 쓰는 메뉴를 한시적으로 팔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LPG 공급난이 이어지면서 인도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는 인덕션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대량 품절 사태가 벌어졌다.
■기름값 급등한 베트남 진출 韓기업도 고심
국민 10명 중 8명이 오토바이를 주요 교통 수단으로 이용 중인 베트남도 이번 이란 전쟁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2월 말 리터당 2만151동(1168원)을 기록한 휘발유 가격은 3월 10일 3만1450동(1824원)을 기록한 후 베트남 정부의 개입으로 2만4332동(1411원) 수준을 유지 중이다. 반면 디젤 가격은 같은 기간 1만9272동(1178원)에서 3만5440동(2055원)으로 급등한 상태다.
이날 베트남 하노이 시내에서 만난 대학생 하이씨는 "예전엔 아르바이트를 3~4시간 하면 충분히 휘발유를 채울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 일당이 모두 휘발유 주유에 들어가고 있다"면서 "조금이라도 싼 주유소가 있는지 친구들과 잘로(베트남 대표 SNS) 단체방에서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30대 회사원 뚜언씨는 "이란 전쟁이 지금 당장 종전을 한다해도 휘발유·경유 값이 당분간은 상승세를 유지할 것 같아 우려스럽다"면서 "정부에서 에탄올 혼합유 보급에 나섰는데 오토바이 엔진에 특히 치명적이라고 해서 주유를 고민 중"이라고 우려했다. 베트남 정부는 오는 6월 1일부터 에탄올 10% 혼합유인 E10을 전국적으로 전면 도입할 예정이다. 당초 내년 1월 도입을 계획했으나, 이란발 고유가에 도입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전해진다.
베트남이 고유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국내 진출 기업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TV 등에 사용되는 디스플레이 필름, 특수 코팅제, 각종 플라스틱 부품은 석유 화학 제품(나프타 등)이 주원료다. 또, 고유가로 전기료를 비롯해 물류비, 운송비 등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당장의 피해는 없지만 사업 환경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면서 "국제정세와 유가 추이를 모니터링하며 본사와 활발히 소통 중"이라고 말했다.
■보조금 지급 나선 인도네시아… "전기차로 바꿀까"
인도네시아도 유가 확보에 비상이 걸렸지만, 연료 보조금을 통해 그나마 전쟁으로 인한 타격을 덜 받고 있다. 보조금 대상 휘발유는 리터당 1만 루피아(899원)로 고정된 상황이며, 비보조금 대상인 고급 휘발유는 2월 28일 대비 4% 오른 1만2300루피아(1105원)를 기록 중이다.
30대 관광 가이드인 아흐마드씨는 "업무상 연료비 지출이 많은데 기존에는 고급 휘발유를 사용했으나 지출이 커져 보조금을 받는 일반 휘발유로 바꿨다"면서 "이번 가격 인상을 계기로 비용 절감과 친환경성을 고려해 전기차로 차종을 바꿀까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본지가 찾은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 공사 산하 주유소들은 인파로 북적였지만, 인근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 고급 휘발유를 주로 취급하는 글로벌 석유 기업 셸의 주유소는 한산해 대조를 이뤘다.
rejune1112@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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