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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체제의 해체, 새로운 리더십의 탄생인가 위기인가? [김문경의 리더십테크](8)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05 09:00

수정 2026.04.05 09:00

[파이낸셜뉴스] 회의실 문이 열린다. CEO가 자리에 앉는다. 그 옆에는… 아무도 없다.

20여 년간 한국 대기업의 회의실에는 늘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총수 혹은 그룹 전체를 대표하는 CEO,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부회장. 이른바 '2인자 체제'다.

그 구도가 지금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2인자 체제의 해체, 새로운 리더십의 탄생인가 위기인가? [김문경의 리더십테크](8)

2025년 말에서 2026년 초 사이 정기 인사에서 한국 재계는 상징적인 결단을 내렸다. 삼성, LG, 롯데 등 주요 그룹이 일제히 부회장단을 대폭 축소하거나 사실상 해체했고, 500대 기업 신임 CEO의 평균 연령은 57.7세로 2.1세 낮아졌다. 단순한 인사 조정이 아니다. 20년 넘게 한국 기업 경영을 지배해 온 리더십 구조를 뿌리째 다시 짜는 '리셋'이다.

그 분수령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있다. 삼성전자 정현호 부회장이다.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사업지원TF를 이끌며 이재용 회장의 최측근으로서 팬데믹, 반도체 사이클 급변, 글로벌 리스크 등 수많은 위기 국면을 함께 관리해 온 인물. 그가 2025년 11월, 사업지원 TF장에서 물러나 회장 보좌역으로 인선했다. 명목상 후진 양성이지만, 재계가 읽은 신호는 명확했다. "더 이상, 예전 방식의 2인자 자리는 없다."
LG는 2인 부회장 체제를 1인 체제로 줄였고, 롯데는 그룹 부회장단 4명을 전원 퇴임시키며 계열사 책임경영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외부 영입 스타 CEO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조직 안에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변화를 몸으로 겪어 온, 50대 초중반의 내부 출신 실무형 리더들이었다.

2인자 체제는 왜 그토록 오래 지속됐을까?

그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경영 구조를 이원화했다. 총수나 지주사 회장은 대외 역할과 장기 전략을 맡고, 부회장은 계열사 경영과 사업 실행을 실질적으로 책임졌다. 위기 국면에서 리스크를 나눠 들고, 오너 리더십의 상징성을 지키면서 전문경영인이 실행을 담당하는 이중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안정성에는 대가가 있었다. '의사결정 속도'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윗선'과 '실무 2인자'를 모두 거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결론은 자꾸 지연됐다. 더 깊은 문제는 '책임의 모호함'이었다. 성과가 좋을 때는 오너의 결단과 2인자의 실행력이 함께 강조됐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는 "큰 그림은 맞았다", "현장 상황이 달라졌다"는 식으로 책임은 분산됐다. 모두가 문제를 보지만 아무도 그 문제를 자기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 구조. 그 지점에서 조직의 침묵은 깊어졌다.

그렇다면 2026년 인사가 보내는 새로운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안정성에서 민첩성으로, 보좌형에서 책임형으로"의 전환이다.

2인자 체제의 해체, 새로운 리더십의 탄생인가 위기인가? [김문경의 리더십테크](8)

삼성전자는 DS(반도체)와 DX(세트)를 각각 총괄하는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재구성했다. 겉으로는 다시 '2인 체제'처럼 보이지만, 과거와는 본질이 다르다. 각 대표이사의 책임 범위가 사업 영역별로 명확히 구분되어, 해당 영역의 성과와 의사결정을 온전히 책임지는 구조다. SK그룹도 수펙스 추구협의회의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면서, 계열사별 자율과 책임을 키우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구조와 인사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속도, 책임, 혁신

이 변화에는 긍정적 신호가 분명 있다. 중간 계층을 여러 번 거치지 않아도 되는 빠른 판단과 실행, 성과에 대한 명확한 책임 소재, 현장 중심의 자율성 확대가 그것이다. 그러나 위험 또한 함께 온다. 의사결정이 소수에게 집중될수록, 그 리더의 판단 실수는 곧 전체의 리스크가 된다. 과거 2인자와 부회장이 담당했던 '조율과 완충'의 역할을 누가 대신할 것인가? 그리고 가장 예리한 역설이 있다. CEO 중심의 조직일수록, 반대 의견을 낸다는 것은 더 큰 용기를 요구한다. 빠른 결정을 내리는 조직은 남지만, 중요한 신호를 놓치는 조직이 될 수 있다. 속도는 높아졌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 조직. 이것이 새로운 체제가 빠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그러므로 이 변화는 삼성·LG·롯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규모를 막론하고 모든 조직이 지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지금 당신의 조직을 한번 들여다보라.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몇 단계를 거치는가?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의 소재가 즉시 드러나는가, 아니면 늘 그렇듯 회색지대 속으로 사라지는가? 중간 리더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위로 전달하는 통로인가, 아니면 CEO의 불편한 진실을 차단하는 방패막이가 되어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면, 구조는 바뀌었어도 문화는 아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신호다.

공식 구조가 단순해질수록, 비공식 대화와 이견을 보장하는 장치가 더욱 치밀하게 필요하다. 빠른 의사결정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빠르면서도, 서로 다른 관점과 반대 의견이 끝까지 올라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이 새로운 리더십의 조건이다.

정현호 부회장의 퇴장은 하나의 상징이다. 그것은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니라, 한국 기업 리더십 구조의 분수령이다. 20여 년간 안정성을 제공했던 2인자의 시대가 저물고, 책임형 리더십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구조의 변화가 자동으로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속도와 책임, 포용과 학습이 함께 설계될 때만 새로운 체제는 경쟁력이 된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은 지금 그 구조를 하나씩 걷어내고 있다. 새로운 리더는 보좌가 아니라 책임을 진다.


2인자 체제가 해체된 이 시점, 질문은 재계가 아니라 각 조직의 리더 개인에게 돌아온다. 당신은 여전히 '2인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지는 리더십을 선택할 것인가?

/김문경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