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도 한 발 앞으로 내딛다 보면 좋아지는 날이 올 겁니다."
국민 애송시 '풀꽃'으로 알려진 나태주 시인(81)이 9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신작 시집 '다만 너이기 때문에' 출간 배경을 설명하며, 독자들에게 조용하고 단단한 위로를 건넸다.
그의 인생 시집 프로젝트 마지막 권인 '다만 너이기 때문에'는 '나를 사랑하는 것'(1권)과 '나를 찾아가는 과정'(2권)을 지나, '가장 나답게 빛나라'(3권)는 메시지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그간 쉽고도 깊은 언어로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여온 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인생의 기로에 서 있는 마흔의 시간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번 시집은 나태주 시선집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시집으로, 40대를 사는 분들을 위한 책이다.
나 시인의 말대로 이번 시집의 기획 의도는 분명하다. 청춘을 지나 어느 정도 삶의 책임과 무게를 짊어진 이들, 그러나 여전히 흔들리고 지치며 자신을 의심하는 이들을 향해 그는 '괜찮다'는 말 이상의 말을 건네고 싶어한다.
그래서일까. '다만 너이기 때문에'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시집의 중심을 압축한다. 남보다 잘나서도 아니고, 더 예뻐서도 아니고, 어떤 성취를 이뤘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감각은 경쟁과 비교가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단순한 위로를 넘어 오래 남는 문장으로 다가온다.
나 시인은 "이번 시집은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주로 담고 싶었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지 자존감을 북돋우는 구호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나다운 삶'의 의미를 보다 현실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사람마다 유일한 삶이 있고 그 궤적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 길을 보다 일찍 발견하고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나 시인의 지론이다.
그는 "절대로 남을 따라서 살 일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특히 40대에 대해서는 "분명히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할 나이"라고 강조했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성공과 실패를 재단하기보다 각자의 삶이 가진 속도와 방향을 돌아보라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다만 너이기 때문에'는 단순한 시집을 넘어 문득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집으로 읽힌다. 시집이 유독 40대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 시인은 "인생 전체로 보아 가장 어려운 시기이니 잘 견디면서 살라고 말하고 싶다"며 "정말로 힘이 들어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다 보면 좋아지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걸 믿길 바란다"고 위로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도 솔직히 꺼내 놓았다. "나 자신도 40대는 너무나 힘들어서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지나고 보니 내가 원하는 것들이 이뤄지는 날들이 그 다음에 오기도 했다"고 했다. 지금 아무리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그의 당부는 그래서 공허한 조언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다만 너이기 때문에'는 삶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견디는 법, 그리고 자신을 놓지 않는 법을 조용히 일러주는 시집에 가깝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어려운 가운데서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나 시인의 말은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인생의 모랫길과 사막길을 전제한다.
다만, 이 시집이 특별한 것은 그 길의 끝에 거창한 보상을 약속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걸어가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일깨운다는 데 있다.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빨리 가는 능력이 아닌 꺾이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계속 살아내는 마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시집은 여러 편의 시와 문장을 통해 차분히 환기한다.
이번 시집의 또 다른 특징은 프랑스 화가 앙리 마르탱의 그림과 함께 엮였다는 점이다. 그는 이 구성에 대해 전적으로 출판사의 기획이 반영된 부분임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책의 결에 잘 어울린다고 고백한다.
출판사에 따르면 앙리 마르탱은 이른바 '늦깎이 화가'로, 40대를 위한 시집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용기를 건네기 위한 선택이었다. 나 시인은 "40대에게 드리는 시집이니 용기를 가지시라는 뜻에서 이 화가의 그림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즉, 이번 시집에서 앙리 마르탱의 그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늦게 피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시의 바깥에서 조용히 지지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된다.
그 가운데서도 나 시인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긴 그림은 표지 작품이다. 그는 "엄마와 딸로 보이는 두 사람이 숲속에서 뜨개질하는 모습이 매우 평화롭고 고전적인 느낌이어서 좋았다"고 언급했다. 이 짧은 언급은 이번 시집의 정서를 압축해 보여준다. 평화롭고 다정하며 서두르지 않는 장면은 책이 지향하는 위로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시집을 펼치는 독자들은 시 뿐 아닌 그림을 통해서도 이 시집이 지향하는 느린 위로의 분위기를 함께 체감하게 된다.
결국 이번 시집도 그간 써 내려갔던 시집처럼 작고 가까운 삶의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고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서 "자기의 소유를 조금씩 줄이고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만족할 줄 알고 멈출 줄 알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어 "시집은 마음을 맑게 해주는 구실을 하는 책인데, 부디 이 시집을 읽고 조금이라도 맑은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의 말처럼 '다만 너이기 때문에'는 누군가의 삶을 단번에 바꾸는 시집이라기보다, 지친 마음을 잠시 맑게 헹궈주는 시집에 가깝다. 남과 비교하느라 지친 마음, 제 길을 잃은 듯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나 시인은 다시 한번 조용히 말한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소중하다"고.
한편, 나 시인은 1945년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나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43년간 초등교육 현장에 몸담으며 시를 써온 시인이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대표작 '풀꽃'을 비롯해 쉽고도 깊이 있는 언어로 한국 독자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교직에서의 삶과 일상의 체온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시세계를 일궈온 그는 퇴임 후에도 집필과 강연, 문학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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