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장 속 미생물이 보내는 '비밀 메시지', 지방간염 치료 열쇠였다 [언박싱 연구실]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13 05:56

수정 2026.04.13 05:56

<25>국민대 곽민진 교수팀
인공지능 결합해 진단 정확도 90% 달성
차세대 간 질환 치료 길 열어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이번 연구는 장내 미생물과 혈액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정밀 분석하여, 통증을 유발하는 조직 검사 없이도 지방간염을 90% 이상의 정확도로 진단하는 기술을 구현했다. 나아가 질환을 악화시키거나 완화하는 특정 세균의 역할을 규명함으로써, 몸속 미생물을 활용한 차세대 간 질환 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이번 연구는 장내 미생물과 혈액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정밀 분석하여, 통증을 유발하는 조직 검사 없이도 지방간염을 90% 이상의 정확도로 진단하는 기술을 구현했다. 나아가 질환을 악화시키거나 완화하는 특정 세균의 역할을 규명함으로써, 몸속 미생물을 활용한 차세대 간 질환 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파이낸셜뉴스] 국민대학교 임산생명공학과 곽민진 교수팀은 장 속 특정 미생물과 그 미생물이 분비하는 아주 작은 주머니가 지방간염을 악화시키거나 완화시킨다는 사실을 동물실험으로 입증했다. 또한 미생물 정보와 혈액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아픈 검사 없이도 지방간염을 90% 이상의 정확도로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고통스러운 검사 대신 대변과 혈액으로 진단

지방간염(MASH)은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화나 간암으로 이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계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옆구리에 긴 바늘을 찔러 간 조직을 직접 뽑아내는 '아픈 검사(간 생검)'가 필요했다.

이번 연구가 실용화되면 대변이나 혈액 검사만으로도 지방간염을 빠르게 확인하는 차세대 검진이 가능해진다. 나아가 나쁜 장내 세균을 억제하고 좋은 세균을 보충하는 '몸속 미생물 치료제(마이크로바이옴)' 개발에도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100일간의 추적으로 밝혀낸 장내 미생물의 정체

연구팀은 특별히 설계된 먹이를 쥐에게 100일간 먹이며 지방간염 상태를 만들었다. 이후 20일마다 간 조직과 혈액, 장 내용물을 채취해 장내 세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했다.

그 결과, 병이 심해질수록 늘어나는 세균과 줄어드는 세균이 뚜렷하게 갈렸다. '롬부치아 호미니스'라는 세균은 질환이 악화될수록 증가하며 간에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쌓이게 하고 염증을 키웠다. 반대로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는 병이 진행될수록 줄어들었다. 연구팀이 이 착한 세균과 세균이 내뿜는 작은 주머니(소포체)를 쥐에게 먹이자, 지방을 만드는 유전자 활동이 줄어들고 간 손상 지표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혈액 수치와 장내 세균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혈액 검사만으로 병을 맞힐 확률은 약 82%, 세균 정보만으로는 약 84%였다. 그런데 두 정보를 합치자 정확도가 90%를 훌쩍 넘었다. 장내 미생물 정보가 혈액 검사만으로는 놓치기 쉬운 몸속 신호를 완벽하게 보완해 준다는 사실을 수치로 증명한 셈이다.

이번 성과는 장 속 미생물과 간 질환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정밀하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비록 아직은 동물실험 단계이고 미생물의 주머니가 간에 직접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대변과 혈액만으로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발견은 국민대학교 곽민진 교수 연구팀이 주도했으며 박병혁, 최혜진 연구원 등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연구 결과는 약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인 '파마콜로지컬 리서치(Pharmacological Research)'에 게재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