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오른발·오른팔 동시에… 야쿠자가 모사한 사무라이의 걸음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14 18:12

수정 2026.04.14 23:42

⑨ 야쿠자
연구차 방문한 日 요나구니서 우연히 만난 회장님
깍두기 머리들이 도열해 상체 깊숙이 굽히며 구호
알고보니 야쿠자… 日 사회의 조직적 위계성 목격
막부 해체되면서 설 자리 잃은 무사들이 집단 형성
그 중 말단 '마치얏코' 사업이 흥해 지금의 야쿠자
걸음걸이만으로도 주변 압도, 비밀은 '난바 아루키'
사무라이들이 칼집 충돌 막으려 수족평행으로 걸어
야쿠자의 기원으로 거론되는 '마치얏코'. 사진은 1895년 이노우에 주키치가 펴낸 '도쿄 생활의 스케치'에 게재된 삽화.
야쿠자의 기원으로 거론되는 '마치얏코'. 사진은 1895년 이노우에 주키치가 펴낸 '도쿄 생활의 스케치'에 게재된 삽화.

발품을 팔아야 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서는 남미 일대에 어설프게 얽어진 '코리안 마피아'를, 사할린에서는 러시아의 진짜 '마피야'를 접할 기회도 있었다. 일본을 드나들다 보니 그야말로 우연히 '야쿠자'와 접할 기회가 있었다. 십여년 전 정월 안케이 유지 교수와 일본 최남단의 요나구니 섬을 방문했다. 대만의 고산준령에 110㎞ 다가선 곳으로, 1477년 그 섬에 표착해 반년간 생활했던 제주도 사람들의 족적을 찾는 목적의 방문이었다.

■日서 만난 회장님, 알고보니 야쿠자

일과를 끝내고 여인숙으로 들어가니, 주인으로부터 자신이 경영하는 "산 위의 호텔로 오라"는 쪽지가 있었다.

호텔 라운지 널찍한 공간의 가운데 벽에 대형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에서는 해저유적을 촬영했다는 NHK 수중팀이 스쿠버 장비를 정돈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커다란 생선으로부터 횟감을 떠 내는 중이었다. 건장한 중년 남자의 옆자리로 안내되자마자 명함을 교환했는데, 받은 명함의 뒷면에는 회사 명칭 10개 정도가 빼곡하게 인쇄돼 있었다. 화면은 낚싯줄을 잡은 사람과 청새치의 처절한 사투 장면을 방영했는데, 주인공은 바로 옆에 앉은 회장이었다. 공중으로 솟은 청새치 한 마리가 뾰죽한 긴 부리로 낚싯줄을 당기고 있는 사람을 향해 돌진했고, 선장이 철판으로 잽싸게 방어막을 치니 "꽝" 하는 굉음으로 종료되었다. 그날 잡힌 청새치 한 마리로 20여명의 객들이 번개회식을 한 셈이었다.

수행원을 대동한 회장은 매달 한 번 청새치 낚시를 위해 오사카에서 요나구니를 방문했다. 배를 통째로 빌리고, 며칠간 호텔에서 숙식을 해야 했다. 한쪽 다리가 불구인 호텔 관리인이 낚싯배 선장이었고, 철방패로 청새치의 역공을 막는 그의 역할이 중요했다. 전 과정을 감당해야 할 비용은 어렵지 않게 계산된다. 요나구니 인근 해역에서 500㎏짜리를 잡는 것이 회장의 목표라고 했다.

그날 잡은 청새치는 170㎏이었으며, 자신이 달성한 기록이 375㎏이라는 증명사진에는 회장보다 키가 큰 청새치가 거꾸로 달려 있었다. 나는 그해 3월 니시노미야의 관서학원대학에서 논문 발표가 예정되었기 때문에, 나의 계획을 들은 회장이 즉석에서 최고의 스시집으로 초청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시간이 지나 약속된 시간과 장소의 전철역 광장에서 기다리는데, 멀리서 흰색 '스트레치 리무진' 한 대가 시야에 들어왔고, 내 앞에 정차하면서 하차한 사람이 그 회장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TV와 무전기 및 카라오케를 갖춘 응접세트였다. 도착한 곳은 아마가사키에 있는 간판도 없는 조그만 가게였는데, 백발의 주인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밥을 주무르는 그 가게는 그날 다른 손님을 받지 않았다. 방 안은 유명인사들의 맛자랑 낙서로 도배질이 되어 있었다.

세 명이서 네댓 시간 정도 각종 스시 맛보기와 음주가 종료된 뒤 가게 밖으로 나오는 순간! 깍두기머리(카쿠가리)들이 두 줄로 도열해 상체를 깊이 굽힌 '오지기'(お辭儀) 자세로 구호를 외치는 광경을 목격한 나는 회장의 손을 붙잡고 황급히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당신, 야쿠자냐?" 일본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의 어설픈 특권으로 추궁했다. 회장은 오사카 일대의 '오야붕'급이라고 했다. 수행원인 '자이니치'(재일동포) 한모씨는 그의 '꼬붕'이었다. 오야붕(親分)과 꼬붕(子分)의 조직적 위계성은 가정에서부터 기업이나 정치조직 등 사람뿐만이 아니라 신들의 계보에서도 적용되는 일본 사회의 기본적 개념이다.

■하급 무사 '마치얏코' 등이 세력 키워

천황이 전면에 등장하는 명치유신 이후, 장군이 지배하던 막부가 해체되면서 전통적 무사 신분이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난 집단이 야쿠자다. 막부 편의 번에 속한 무사들은 실직 상태로 대륙 낭인이 되기도 했고, 상당수는 북해도의 식민지 개척으로도 내몰렸다. 그 과정에서 무사 사회의 말단에서 심부름을 하던 '게난'(下男)이라는 '마치얏코'(町奴)들이 도시 이면부에서 매춘과 유흥업 그리고 건설과 운송업에 손을 뻗었으며, 버블경제 동안 세력을 키웠다는 평이 일반적 인식이다. 상공업이 중흥됐던 에도 중기에 막부가 복권에 해당되는 '토미쿠지'(富くじ)를 신사나 사찰에 허가한 적이 있었으며, 마치얏코가 간여했던 복권의 불법거래를 '우라토미'(裏富)라고 한다. 그래서 야쿠자 기원의 도박설이 유력하며, 근대화 이전부터 존재했던 일본 특유의 사회조직이다. '사적 보호를 판매하는 경제적 주체'로 정의된 마피아 이론은 디에고 감베타 교수의 '시실리 마피아'(1993년)에서 제기됐고, 사회학자 피터 힐의 '일본 마피아'(2003년)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코쿠부 나오이치의 '향수기'(鄕愁記, 1946)라는 글 속에 그려진 '난바 아루키' 보행 스타일. 사진=전경수 교수
코쿠부 나오이치의 '향수기'(鄕愁記, 1946)라는 글 속에 그려진 '난바 아루키' 보행 스타일. 사진=전경수 교수

조직의 특수성, 대형 범죄와의 관련성으로 인해 은어를 비롯한 야쿠자의 기행들이 심심풀이로 회자된다. 그중에서도 야쿠자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난바 아루키'(難波步き)는 사무라이 계층의 전통적 보행기법으로, 팔자걸음이면서 속도가 느리다. 주변을 압도할 목적으로서, 걷는다기보다는 내딛는 발이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아간다. 보통 보행은 오른발이 나갈 때 왼팔이 앞으로 움직이는 수족교차식이지만, 난바 아루키의 특징은 오른발이 나갈 때 오른팔이 함께 앞으로 움직이는 수족평행식이다. 같은 쪽 팔다리가 함께 움직이면, 허리와 상체의 비틀림이 덜 발생하고, 사무라이가 허리에 찬 칼이 옆으로 흔들리거나 다른 사람의 칼집과 부딪침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단다. 에도시대 역전의 파출소 역할을 했던 '히캬쿠'(飛脚)들은 장거리를 빨리 달리기 위해 에너지 소모가 적은 이 주법을 사용했다는 설과 오사카의 옛 지명인 '난바' 지역의 카부키 배우들이 무대에서 걸었던 동작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야쿠자 보행법의 비밀 '난바 아루키'

문리대 학생 시절 고고학의 은사인 김원룡 선생께서는 강의 중 간혹 일본 학자의 이름을 칠판에 적어주셨는데, 코쿠부 나오이치(國分直一)는 지금도 선명하다. 식민지 대만의 대남에서 성장했고, 대북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도대학에서 역사학을 연마했던 분이다.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 매료됐던 학생 시절부터 특고(特高)의 감시를 받았지만, 자필서에 미국의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를 존경했다고 썼다. 일본인 중에서도 깡마른 그는 대만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고고학과 인류학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고, 70년대에 한국의 박물관과 유적지도 다녀갔다. 초분과 세골장을 포함하는 복장제에 관한 그의 논문은 깊이 있게 정독되기를 기다린다. 그가 남긴 서적과 자료들은 대만대학의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일본 패전 후 대만대학 고고인류학과에서 잠시 유용되었던 기간 동안 동료들과 만든 '회람잡지'(回覽雜誌)에 그려진 보행 그림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나는 타테이시 테츠오미의 소간회인 코쿠부의 보행방식이 바로 '난바 아루키'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보아스의 종합적 인류학을 동경했던 저세상의 코쿠부 선생께, 당신의 습성인 '난바 아루키의 신체인류학'이라는 연구 주제를 제안하고 싶다.

오른발·오른팔 동시에… 야쿠자가 모사한 사무라이의 걸음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