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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연합뉴스

입력 2026.04.15 08:00

수정 2026.04.15 08:00

국내 최초로 하천 퇴적지에 조성된 수변 정원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국내 최초로 하천 퇴적지에 조성된 수변 정원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울산=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도심 속 공공 정원은 자신의 정원을 가질 수 없는 도시인들이 나날이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 자연주의 정원 작품을 만든 세계적인 정원 작가 피트 아우돌프의 말이다.

◇ 생명을 사랑하는 본능…바이오필리아

우리는 왜 나무, 숲에 끌리고 산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현대의 다윈'으로 불렸던 에드워드 O. 윌슨(1929∼2021)은 저서 '바이오필리아'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생명체와 연결되기를 갈망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자연환경은 생존과 직결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사람의 유전자 속에는 자연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안정을 찾는 바이오필리아(생명 사랑)가 본능처럼 각인돼 있다는 것이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울산광역시를 적시는 태화강은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시민들의 피땀으로 태화강은 생명의 강으로 다시 태어났다. 태화강 변 십리대숲을 중심으로 조성된 태화강 국가정원은 울산의 자부심이자 최고의 휴식처로 변모했다.

오염된 강을 생명의 성지로 바꾸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기쁨과 휴식을 얻는 현상을 바이오필리아 말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

◇ '죽음의 강'에서 '생명의 성지'로

대한민국 산업 수도라 해도 과언이 아닌 울산은 고래잡이로 유명한 작은 어촌에 불과했었다.

1962년 특정 공업지구 지정은 울산의 공업 도시 선언과 다름없었다.

이후 울산은 조국 근대화의 중심 역할을 했지만 해안 지역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고, 도심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태화강은 수질 오염으로 범벅됐다.

강물은 검은색으로 변해 하수구를 방불했고, 울산은 공해 도시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1995년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태화강 수질이 공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는 6급수로 전락한 끝에 울산은 2004년 에코폴리스를 선언하고, 시민들이 태화강 살리기에 나섰다.

그 결과 수질오염 측정 지표인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 1996년 11.3㎎/ℓ에서 2007년 1급수 수준인 2.0㎎/ℓ로 낮아졌다. 태화강은 이후 지금까지 1급수를 유지하고 있다.

태화강이 부활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시민들의 성원은 뜨거웠다.

강 범람을 막기 위해 1987년 강물의 유속을 방해하는 십리대숲을 베기로 한 하천 정비계획이 수립되자 시민들은 대숲 보전 운동을 벌여 1995년 중앙정부로부터 대숲 존치 결정을 받아냈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1994년 십리대숲이 위치한 태화들이 자연녹지에서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돼 대숲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대숲이 잘려 나갈 위기가 다시 도래하자 시민들은 태화들 한 평 사기 운동을 벌였다.

1사 1하천 살리기 운동, 수중 정화 활동, 외래어종 퇴치 등 숱한 시민의 자발적인 노력이 함께 했다.

◇ 인공적이지 않고 하천 환경에 순응한 국가정원

태화강 국가정원은 국내 최초로 하천 퇴적지에 조성된 수변 정원이다.

강의 풍부한 생태, 역사 자원이 공존하는 자연주의 정원이다. 넓고 푸른 태화강의 양안 둔치에 대나무 숲이 길게 늘어서 있고 중간중간에 다양한 주제의 정원, 생태원, 광장이 조성돼 있었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사람과 반려동물이 곳곳에서 뒤섞여 산책이나 운동을 하고, 자전거 도로에서는 자전거, 전동 킥보드 등을 탄 라이더들이 느긋한 속도를 즐기고 있었다.

하늘에는 독수리와 매가 두 날개를 쫙 편 채 활강하고 있었다.

강에서는 왜가리, 갈매기, 백로, 물닭, 오리가 먹이를 찾아 자맥질하는데 커다란 잉어가 아무 위협을 느끼지 않고 유영하는 풍경은 바라보기만 해도 치유를 선물했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생태, 대나무, 계절, 수생, 참여, 무궁화 등 6개의 큰 주제를 가진 20개 이상의 작은 테마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면적은 83만5천여㎡로 태화지구, 삼호지구로 나뉜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십리대숲 길, 은하수길, 모네의 정원, 초화원, 대나무생태원, 국화정원, 무궁화정원, 시민·작가정원 등의 명소는 태화지구에 있다.

십리대숲은 태화강 변을 따라 약 50만본에 달하는 대나무가 십 리(4㎞)에 걸쳐 펼쳐진 국내 최대 규모의 대나무 숲 정원이다.

은하수 길은 색색의 불빛이 대나무와 만나 밤하늘의 은하수를 거니는 기분을 자아내는 야간 정원이다. 초화원은 봄에 꽃양귀비, 여름에 해바라기, 가을에 코스모스가 피어나는 꽃 정원이다.

봄을 맞아 초화원에서는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돋아난 새싹을 빈 땅으로 옮기거나 새싹들 사이 간격을 넓혀주는 솎음작업이 한창이었다.

시민·작가 정원은 2018년 열린 태화강 정원박람회 때 울산 시민들과 국내외 초청 작가들이 직접 만든 참여 예술 정원이었다. 울산의 상징인 고래를 모티브로 한 정원들이 눈에 띄었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울산에는 고래문화마을로 유명한 장생포가 있고, 선사시대 고래사냥을 표현한 반구대암각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정원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트 아우돌프가 연출한 자연주의 정원도 태화지구에 있다.

작품을 구현할 장소 선택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는 죽음의 강을 살려내 국가정원을 만들어낸 울산 시민들의 노력에 감동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이곳에 자신의 정원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 연출에 필요한 식재에는 전국 각지의 전문가 360명과 울산 시민들이 참여했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삼호지구에는 조류생태원, 은행나무정원, 보라정원, 숲속정원 등이 있다.

식물 생태를 사람들이 관찰하고 즐기는 구역이 태화지구라면 삼호지구는 태화강을 찾는 새들을 보호하고, 자연과 사람이 함께 휴식하는 공간이다.

태화강에는 겨울에는 떼까마귀와 갈까마귀가, 여름에는 중대백로, 중백로, 쇠백로 등 백로와 왜가리가 날아든다. 삼호지구 대숲은 철새들이 쉬고 번식할 수 있게, 사람의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

텃새화한 왜가리들이 이 대숲에서 알을 낳아 품고 있는 모습을 철새홍보관에 설치된 폐쇄회로TV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겨울 철새 중 시베리아에서 태화강으로 날아오는 떼까마귀는 한해 10만마리가량으로 추산된다.

일출 때는 먹이 활동하러 대숲을 떠나고, 일몰 때는 이 숲으로 되돌아오는 수천, 수만 마리의 떼까마귀 군무가 장관이다. 떼까마귀들은 3월 말쯤 시베리아로 돌아간다.

떼까마귀들이 대숲을 드나들 때 백로나 왜가리가 쉬는 보금자리를 피해 다니는 것이 관찰된다.

새들이 삼호지구 대숲에서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는 풍경이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한국에는 국가정원이 둘 있다. 국가정원 1호가 순천만국가정원이고, 태화강 국가정원이 2호이다.

각각 2015년, 2019년에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조형미가 돋보인다. 태화강 국가정원에는 자연미가 흐른다.

국가정원 3호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을 대표할만한 품격을 지닌 국가정원으로 지정되기는 어렵다.

순천만과 태화강의 두 정원을 찾아 조형미와 자연미로 대표되는 정원 문화의 흐름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롭다.

◇ 울산에서만 흐르는 울산의 젖줄…태화강

영남지방에서 강은 대부분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하지만 태화강은 드물게도 낙동강으로 유입되지 않고 동해로 빠진다.

울산광역시에서 발원해 울산에서만 흐르다가 울산만에서 바다와 만나는, 오롯이 울산 시민만을 위한 강이다.

해발 1천m를 넘는 영남알프스의 준봉 중 가장 높은 가지산과 신불산 등에서 발원한다.

하구에서 가장 먼 발원지는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있는 백운산 탑골샘이다.

태화강은 총길이 47.54㎞로 100리가 넘는다. 울산시 인구 120만여 명의 약 45%인 54만여 명이 이 강의 유역에서 산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여행honey] 죽음의 강에서 태어난 생명의 성지…태화강 국가정원 (출처=연합뉴스)


울산은 2028년 태화강 국가정원, 삼산·여천매립장, 남산로 등에서 31개국이 참여하는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예상 관람객을 1천300만여 명으로 잡고 있다.

이를 통해 태화강 국가정원은 세계적인 정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울산은 탄소 중립의 아름다운 정원 도시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태화강 국가정원에 서면 울산시가 품은 생명력이 감지되고 태화강의 어제와 오늘, 내일이 보이는 듯하다.

공해 도시가 생태 도시, 정원 도시로 가는 길 위에 태화강 국가정원이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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