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156km·8K 무실점… 잠실벌 찢어버린 '좌완 에이스의 귀환'
체인지업 버렸다… 직구·슬라이더 '투피치'가 만든 완벽한 압살
위기마다 불뿜은 K-K-K… 'ERA 11.42' 악몽 지워낸 정면승부
출장 0' 주효상 파격 배터리 통했다… 3-0 리드 속 감격의 첫 승 요건
[파이낸셜뉴스] 기나긴 터널의 끝, 마침내 호랑이 군단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좌완 왕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마운드 위에서 짓짓눌려 있던 부담감을 시속 156km의 광속구로 산산조각 내버렸다. KIA 타이거즈의 토종 에이스 이의리가 평균자책점 11.42라는 끔찍했던 악몽을 스스로 찢어버리고 화려한 부활의 찬가를 불렀다.
이의리는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의 방문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91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 2볼넷 8탈삼진 무실점의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앞선 3경기에서 단 한 번도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2패만을 떠안았던 부진을 완벽하게 씻어내는, 그야말로 '대반전'의 피칭이었다.
이날 이의리의 구위는 잠실구장 전광판을 부술 듯이 맹렬했다. 최저 145km에서 최고 156km까지 찍힌 포심 패스트볼은 평균 구속마저 151km에 달했다. 91개의 투구 수 중 스트라이크가 59개일 정도로 윽박지르는 피칭이 일품이었다.
눈여겨볼 점은 철저하게 계산된 '투피치' 전략이었다. 체인지업(3구)과 커브(2구)는 철저히 배제한 채, 불을 뿜는 직구(58구)와 타자의 배트를 헛돌게 만드는 예리한 슬라이더(28구) 단 두 가지 무기만으로 두산 강타선을 압살했다.
과거 이의리를 괴롭혔던 제구 난조의 그림자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기에 몰렸을 때 이의리의 대처는 이전 3경기와는 180도 달랐다.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붙어 삼진을 솎아냈다.
2회말 선두타자 양의지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맞은 위기. 하지만 이의리는 카메론과 양석환을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괴력을 발휘했다. 강승호에게 안타를 맞은 뒤에도 이유찬을 삼진으로 솎아내며 스스로 불을 껐다. 4회에도 양의지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다시 한번 카메론과 양석환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며 두산 벤치에 찬물을 끼얹었다.
승리 투수 요건이 걸린 마지막 5회말. 2사 후 박찬호와 박지훈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1, 2루의 최대 고비를 맞았다. 투구 수는 이미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의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박준순을 상대로 뚝 떨어지는 명품 변화구를 구사해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내며 포효했다. 스스로 만든 위기를 스스로 지워낸 완벽한 위기관리 능력이었다.
이의리는 팀이 3-0으로 앞선 6회말, 든든한 '가성비 철벽' 이태양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기분 좋게 시즌 첫 승리 투수 요건을 품에 안았다.
단순한 1승 요건 그 이상의 가치다. 파죽의 7연승을 달리면서도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이의리가 마침내 구위와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것은, KIA 타이거즈가 완벽한 대권 후보의 퍼즐을 완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잠실벌 밤하늘을 수놓은 시속 156km의 강속구. KIA 팬들의 가슴을 미친 듯이 쿵쾅거리게 만든 이의리의 화려한 귀환에 남은 시즌 호랑이 마운드의 앞날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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