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치매 엄마, 왜 나만 간병하냐고!" 병원 복도에서 터진 싸움 [그래도 가족]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1 18:17

수정 2026.04.21 18:16

가족 45.8% "돌봄 부담 크다"
월평균 간병비 370만원 추정
간병 순번·병원비 앞에서 갈등 커져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가장 가까운 사이여서 더 쉽게 다투고, 또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생활비, 육아, 집안일, 부모 부양처럼 매일의 일상이 가족 안에서 갈등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이웃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작고도 오래된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오늘 밤은 누가 남아?", "지난주엔 내가 했잖아." , "나는 돈만 보내는 사람으로 보이냐."

서울의 한 대학병원 복도에서 80대 노모의 치매 진료를 마친 남매가 언성을 높였다. 큰딸은 집이 가까워 병원에 자주 왔고, 둘째는 지방에서 올라왔다.

저녁 보호자 순번을 정하는 얘기에서 시작된 말다툼은 "왜 나만 시간을 쓰느냐"와 "병원비는 누가 더 내고 있느냐"는 말로 번졌다.

치매 부모를 둔 가족 갈등은 대개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병 자체보다 돌봄을 어떻게 나눌지를 정하는 과정에서 먼저 부딪힌다. 병원 동행을 누가 맡을지, 밤 병실을 누가 지킬지, 간병비는 어떻게 나눌지를 두고 말이 길어진다. 그 과정에서 감정도 같이 쌓인다.

처음부터 싸움이었던 것은 아니다. 부모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약 먹는 시간을 잊고, 밤에 집을 나서려는 일이 생길 때만 해도 가족은 "조금만 더 집에서 모시자"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할은 굳어졌다. 가까이 사는 자녀는 진료 예약과 병원 동행, 응급 상황을 맡고, 멀리 사는 자녀는 생활비와 병원비를 더 보탰다. 그 균형이 흔들릴 때마다 "내가 더 많이 한다"는 말이 나왔다.

AI로 생성한 치매 돌봄 관련 인포그래픽
AI로 생성한 치매 돌봄 관련 인포그래픽


"이제 버티기 어렵다"…치매 부모 돌봄, 가족 갈등으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국내 치매 환자는 97만명으로 추산됐다. 복지부는 2026년에는 100만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했다.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9.25%였다.

환자가 늘수록 가족 부담도 커졌다. 같은 조사에서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치매 환자 가족의 45.8%는 돌봄 부담이 크다고 답했다. 가족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것은 경제적 부담이었다. 지역사회 거주 환자 가족은 38.3%, 시설·병원 이용 가족은 41.3%가 경제적 부담을 먼저 토로했다.

문제는 돈과 시간이 같은 방식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병원비는 통장 이체 내역으로 남고, 얼마를 냈는지도 바로 확인된다. 반면 시간은 명확하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침 일찍 부모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 대소변을 챙기고 식사를 먹이는 일, 밤새 병실을 지키는 일은 숫자로 적히지 않는다. 그래서 형제 사이에서는 "돈은 보냈다"는 말과 "몸으로는 내가 다 했다"는 말이 함께 나온다.

여기에 요양병원이나 시설 입소를 결정하는 과정도 자주 충돌한다. 한쪽은 "조금만 더 집에서 모셔야 한다"고 하고, 다른 쪽은 "이제는 사람이 버티기 어렵다"고 한다. 부모를 더 사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돌봄을 누가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셈이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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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부모 앞에서 커지는 가족 갈등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입원·입소하기 전까지 가족이 먼저 돌본 기간은 평균 27.3개월이었다. 가족 돌봄을 중단한 이유로는 "가족의 경제·사회활동으로 24시간 돌봄이 어렵다"는 응답이 27.2%로 가장 많았다. "증상 악화로 가족들이 불편을 겪어서"라는 응답은 25.0%였다. 가족들이 2년이 넘는 시간을 버티다가 병원이나 시설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간병비 부담도 갈등을 더 깊게 만든다. 한국은행 조사국이 2024년 3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요양병원 등에서 개인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2023년 기준 월평균 간병비는 370만원으로 추정됐다. 가족 안에서 "간병인을 쓰자"는 말이 나오더라도 곧바로 "그 돈을 누가 내느냐"는 말이 따라붙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 돌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 보완 필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6~2030)을 확정하면서 치매관리주치의 전국 확대와 보호자 지원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란 보건복지부 1차관은 당시 "치매가 있어도 환자와 가족이 안심하고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