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4건꼴 발생...소란·폭행·음주 등 열차 내 기행 반복
"익명성·과시성 일탈이 배경...가시적 대응 강화해야"
"익명성·과시성 일탈이 배경...가시적 대응 강화해야"
|
[파이낸셜뉴스] 지하철 열차 내 소란·폭행 등 일탈 행위에 대한 민원이 연간 5만건을 웃돌며 범람하고 있다. 하루 평균 154건꼴로 무질서 행위가 반복되면서 시민 불편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서울교통공사가 집계한 '최근 5년 열차 내 질서저해 민원 현황'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열차 내 질서 저해 관련 민원은 총 28만1089건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21년 5만8786건 △2022년 5만6909건 △2023년 5만6543건 △2024년 5만5888건 △2025년 5만2963건을 기록했다.
노선별로는 2호선에 민원이 집중됐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른바 '지하철 빌런(villain·악당)'으로 불리는 일탈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서울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에서 한 승객이 닫히는 열차 문을 손으로 억지로 잡아 열려고 하면서 출발이 지연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부산 동해선에서는 70~80대로 추정되는 노인이 주변 승객에게 행패를 부리다 이를 말리던 중년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외에도 2호선 을지로4가역에서는 객실 연결통로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소주를 따라 마시거나 냄새가 강한 컵라면·보쌈 정식 등을 열차 내에서 섭취하는 등 기본 질서를 벗어난 행위가 반복적으로 목격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는 △과시성 일탈 △익명성에 기반한 공격성 강화 △개인주의 문화 확산 등이 꼽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타인의 두려움을 유발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심리가 작동할 수 있다"며 "평소 억눌린 불만이나 분노가 통제되지 않는 환경에서 약한 대상에게 표출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하철처럼 익명성이 보장되고 즉각적인 제재를 체감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공격성이 더 쉽게 강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하철은 인구 밀집도가 높은 공간으로 물리적 거리 축소 자체가 사람들을 더 예민하게 만들고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최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감정 표현이 앞서는 경향도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시민들의 피로감 역시 커지고 있다. 직장인 김모씨(32)는 "출·퇴근길마다 시비가 붙거나 기행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며 "이제는 그냥 피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씨(24)는 "누군가 제지하지 않으면 계속 행동 수위가 높아지는 느낌"이라며 "지하철도 공공장소라는 인식이 약해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단순 무질서를 넘어선 공격성 표출 행위가 방치될 경우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지하철 범죄는 총 1만4658건이었다. 연도별로도 △2020년 3088건 △2021년 2946건 △2022년 3589건 △2023년 2673건 △2024년 2362건으로 집계돼 매해 꾸준히 2000건을 상회했다.
전문가들은 단속 강화와 인식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행 철도안전법은 열차 내에서 다른 승객에게 위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 최대 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각 지하철역마다 질서 저해 행위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인력 체계를 갖추고 예방·단속·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며 "지하철 경찰대 순찰을 혼잡 시간대에 확대하는 등 가시적 대응을 강화해야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실시간 감시 등 기술적 대응을 병행하고 승차 시 안면인식 시스템을 도입해 상습 무질서 행위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것 또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