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강성주씨(42·가명)는 22일 오전, 스마트폰 상단 알림창에 뜬 뉴스 속보를 봤다. '코스피, 장중 사상 첫 6400선 돌파…연일 사상 최고치.'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0.90p(0.01%) 내린 6387.57로 출발해 소폭 오름세로 돌아선 뒤 한때 6404.03까지 올랐다. 오후 들어 다시 6380대로 내려앉았지만 어쨌든 전고점을 훌쩍 넘긴 수준이다. 주변에서는 다들 '불장'이라고 했다.
"플랫폼은 배신하지 않는다" 네이버·카카오 사고 버틴 5년
강씨는 증권사 앱을 열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국내 주식 몇 주를 모두 팔아버렸다.
강씨가 네이버와 카카오를 처음 산 건 플랫폼 광풍이 불던 2021년이었다. 당시 네이버는 45만원대, 카카오는 12만원대였다. "한국의 구글이다", "플랫폼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너나할 것 없이 '네카오'를 담던 시절이었다. 증권사 리포트마다 목표주가를 올렸고 강씨도 두 종목에 각각 500만원씩, 총 1000만원을 넣었다.
그러나 '네카오'의 영광은 짧았고 고통은 길었다. 2022년 금리 인상의 칼바람이 불자 성장주의 상징이었던 네카오는 가장 먼저 얼어붙었다. 네이버는 20만원대로 반토막이 났고, 카카오는 고점 대비 70% 가까이 밀려나며 4만원대까지 추락했다. 그래도 강씨는 팔지 않고 버텼다. "언젠간 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떨어질 때마다 물타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더 사들였다. 그렇게 강씨는 '비자발적 장기 투자자'가 됐다.
"애들과 놀아주다가도 주식창... 그냥 털자" 손절 결심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코스피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상승 기류를 앞세워 전고점을 연달아 돌파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이 8000을 넘어 8500까지 내다본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강씨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네이버는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고점의 절반 수준이었고, 카카오는 여전히 고점 대비 68% 아래였다. 당연하게도 그의 계좌는 여전히 파란불이었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이 "불장에 얼마나 벌었냐"며 웃음꽃을 피울 때도 강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이번 불장이 시작됐을 때, 강씨가 "그냥 털자"고 결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네이버는 물에 물을 타 겨우 본전 근처에서 팔았지만 카카오는 결국 손실을 확정했다. 버티고 또 버틴 결과는 마이너스였지만, 강씨는 차라리 홀가분하다고 했다. 지난 5년 동안 강씨의 일상은 '네카오'의 인질이었다. 화장실에서도, 점심시간에도, 심지어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에도 습관적으로 앱을 열어 '파란색 숫자'를 확인했다.
카카오가 추가 하락하는 날엔 온종일 저기압이었고, 네이버가 1~2% 반등하면 세상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금 장투(장기 투자)하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손실률이 커져갈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삼성전자나 더 샀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었다.
손실 확정 회피는 '본능'... 그 사이 시간·감정·기회비용 소모
투자 심리학 관점에서 강씨는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의 함정에 빠진 셈이다. 매몰비용의 오류란 이미 잃은 돈이 아까워서 계속 버티는 것으로,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1980년 처음 정립한 개념이다. 심리학자 할 아크스와 캐서린 블루머는 이를 "돈·시간·노력이 투입된 일일수록 계속 밀어붙이려는 경향이 커진다"고 정의했다. 인간은 손실을 확정 짓는 순간을 본능적으로 피하려하기 때문에, 회복 가능성이 낮은 종목에도 계속 돈과 시간을 붓는다. 그리고 그 사이 다른 기회는 조용히 지나간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코스피가 장중 6400선을 돌파했다는 뉴스에 강씨는 '그냥 버텼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다 고개를 저었다. 코스피 신고가가 곧 네카오 회복을 의미하진 않는다. 코스피가 아무리 올라도 그의 계좌는 여전히 파란불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강씨가 네카오를 들고 고통 받았던 지난 5년간의 시간과 감정, 기회비용까지 포함하면, 그에겐 나쁘지 않은 손절일지도 모른다.
'껄무새'가 되기 싫은데 오늘도 결국 "살 걸, 팔 걸, 버틸 걸…" 주식도, 부동산도, 재테크도 다들 나 빼고 잘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어려운 투자의 세계, 손뼉 치며 공감할 [개미의 세계]를 편하게 받아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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