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달리는 심야버스…누군가에게는 출근하는 첫 차
"버스 덕분에 택시비 아껴요"...하루 잘 보냈다며 '토닥토닥'
"버스 덕분에 택시비 아껴요"...하루 잘 보냈다며 '토닥토닥'
막차가 끊긴 뒤에도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 밤 일을 시작하러 가는 사람, 첫차를 기다려 새벽 일터로 향하는 사람이 같은 자리를 지나갔습니다. 버스 한 대와 택시비, 하루 벌이를 두고 나온 말들 속에서 서민들의 밤과 아침을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이 버스 없으면 일을 못하죠."
지난달 23일 밤부터 24일 새벽까지 서울 노원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버스 한 대를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막차였고, 누군가에게는 심야 근무지로 가는 첫차였다.
밤 11시가 넘자 시민들은 정류장 도착 안내 전광판을 여러 번 올려다봤다. 일반 시내버스 막차가 가까워지자 정류장으로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고, 휴대전화로 심야버스 노선을 다시 찾는 사람도 있었다. 귀가하는 시민들 사이에는 밤 근무지로 향하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한 30대 시민은 심야버스를 기다리며 "밤에 아르바이트가 있는데, 저한테는 이게 첫차"라고 말했다. 다른 승객에게는 막차를 놓친 뒤 타는 차였지만, 그에게는 일을 시작하러 가는 첫 이동 수단이었다. 그는 "이 시간에 택시를 타면 그날 일해서 버는 돈이 줄어든다"며 "조금 늦더라도 버스를 기다리는 편"이라고 했다.
막차가 아니라 첫차인 사람들
심야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는 이 시간대 승객 중 대리운전 기사와 야간 근무자, 새벽 일을 나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낮에 일하는 사람들과 시간이 반대인 분들이 많다"며 "그 사람들에게는 이 버스가 하루를 시작하는 차"라고 말했다.
정류장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교대 시간이 정해져 있어 버스를 놓치면 바로 늦는다"며 "택시를 타면 편하지만 매번 그렇게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광판에 뜬 도착 시간을 보던 그는 "이 시간에 버스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웃으며 말했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들도 비슷하게 말했다. 한 30대 남성은 "(오늘 야근을 했는데) 일 끝나고 나와서 버스가 있으면 다행"이라며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고 했다. 심야버스는 이들에게 귀가 수단이자 다음 날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남기는 방법이었다.
심야버스 지나가고…첫차 기다리는 시민들
다음날인 24일 오전 5시. 정류장에 선 사람들은 바뀌기 시작했다. 늦은 귀가객은 줄었고, 첫차를 타려는 시민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빌딩에서 환경미화 일을 한다는 60대 남성은 "남들 출근하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한다"며 "첫차 시간에 맞춰 나오는 게 몸에 배었다"고 말했다.
경기 북부의 한 물류센터로 간다는 50대 여성은 정류장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정해진 장소까지 가야 회사 차를 탈 수 있다"며 "첫 버스가 늦으면 다음 차까지 놓칠까 봐 계속 시간을 본다"고 했다. 그에게 첫차는 목적지까지 가는 첫 번째 차이자 하루 일정을 맞추는 일종의 수단이었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도 있었다. 4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편의점에서 산 음료를 들고 버스를 기다렸다. 그는 "밤새 일하고 나오면 다른 사람들은 출근한다"며 "같은 아침인데 누구는 끝이고 누구는 시작"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좀 편했으면"…'첫·막차'에 담긴 시민들 바람
정류장에서 나온 말은 결국 생활비와 일자리로 모였다. 50대 남성은 "하루 쉬면 바로 티가 난다"고 했고, 새벽 출근길에 선 한 30대 남성은 "몸은 힘들어도 월급날이 있으니 버틴다"고 말했다. 버스 시간표를 보는 이유도 단순했다. 늦지 않게 일터에 가고, 번 돈을 택시비로 덜 쓰기 위해서였다.
이런 가운데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두고도 시민들의 요구는 크지 않았다. 40대 직장인은 "누가 되든 먹고살게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일자리도 중요하고 결국 경제적으로 사람들이 덜 불안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전 6시께 한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자 기다리던 시민들이 차례로 올랐다. 밤새 일한 사람은 집으로 향했고, 이른 시간 나온 사람은 일터로 향했다. 정류장에는 잠깐 빈자리가 생겼지만 곧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시 섰다. 한 시민은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나가면 좋겠다"며 "일 끝나고 집에 갈 때 버스에서 잠깐 눈 붙이는 게 제일 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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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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