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여보, 나 왜 자꾸 눈물이 나지?"… 강철 같던 남편들 무너뜨린 '이 병' [몸의 오프더레코드]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5 17:00

수정 2026.04.25 17:00

"드라마 보다 왈칵"… 호랑이 같던 남편들의 낯선 눈물
30대부터 꺾이는 '테스토스테론'… 방치하면 노년기 우울증까지
갱년기마저 사치인 4050… 위로받지 못한 채 속으로 삭이는 가장의 무게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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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주말 저녁,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마흔아홉 살 최 모 씨. 평소 즐겨보지도 않던 가족 드라마의 뻔한 이별 장면을 보던 중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더니 급기야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옆에서 과일을 깎던 아내가 "당신, 울어?"라며 토끼 눈을 떴지만, 터져 나온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최 씨는 "최근 들어 이유 없이 우울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서운함이 밀려와 감정 통제가 안 된다"며 "회사에서는 후배들 눈치, 집에서는 아내 눈치 보느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던 대한민국 4050 '강철 가장'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바로 '남성 갱년기'다.

여성들의 전용물로만 여겨졌던 갱년기가 중년 남성들의 몸과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갉아먹고 있다.


◆ "드라마 보다 왈칵"… 호랑이 같던 남편들의 낯선 눈물

남성 갱년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성격의 변화'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던 추진력은 온데간데없고, 매사에 의욕이 떨어지며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작은 농담에도 쉽게 상처받고 화를 내거나, 최 씨처럼 TV를 보다 갑자기 눈물을 훔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한다.

신체적인 변화도 가혹하다. 식사량을 줄여도 뱃살은 튜브처럼 늘어나고, 근육량은 눈에 띄게 감소한다.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낮에는 만성 피로를 견디지 못해 커피를 들이켠다. 무엇보다 성욕 감퇴와 배뇨 장애가 동반되면서 남성으로서의 자신감은 바닥을 친다.


◆30대부터 꺾이는 '테스토스테론'… 방치하면 노년기 우울증까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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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감소가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남성 호르몬은 30대 전후를 정점으로 매년 약 1%씩 서서히 감소한다.

50대에 접어들면 호르몬 수치가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며 본격적인 갱년기 증상이 발현된다.

전문의들은 "여성 갱년기가 폐경과 함께 급격히 찾아온다면, 남성은 아주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본인조차 질환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단순한 노화나 스트레스 탓으로 치부하고 방치할 경우, 심각한 노년기 우울증이나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의학계의 경고다.


◆갱년기마저 사치인 4050… 위로받지 못한 채 속으로 삭이는 가장의 무게

가장 뼈아픈 현실은 4050 남성들에게 갱년기를 앓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에서는 한창 성과를 내야 하는 핵심 관리자이고, 가정에서는 자녀 학비와 노후 준비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나 갱년기인가 봐"라는 고백은 자칫 '나약함'으로 비칠까 두려워 입술을 깨문다.

가족들의 무관심도 남성들을 고립시킨다. 여성 갱년기에는 온 가족이 배려하지만, 남편의 갱년기는 '나이 들어 성격 괴팍해졌다'는 핀잔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오늘도 수많은 가장들은 이유 모를 공허함을 감춘 채, 묵묵히 출근길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