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대구종로고택점 이야기]
대구 중구 진골목…국채보상운동 시작한 달성 서씨 집성촌
골목 안 대구 첫 서양식 주택 정소아과의원에 100년 고택
'서재균 고택' 보수…맞배지붕·팔작지붕에 전통 소주 사용
스타벅스 전통 지키며 공간 재구성…2022년 매장 문 열어
대구 중구 진골목…국채보상운동 시작한 달성 서씨 집성촌
골목 안 대구 첫 서양식 주택 정소아과의원에 100년 고택
'서재균 고택' 보수…맞배지붕·팔작지붕에 전통 소주 사용
스타벅스 전통 지키며 공간 재구성…2022년 매장 문 열어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글을 쓰고 피카소는 예술을 말하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대구=서윤경 기자] 대구 중심지인 중앙로에서 살짝 빗겨 난 골목, 그 곳으로 들어서자 과거로 돌아간 듯 하다.
낯설면서도 정겨운 이 골목은 대구 중구 중앙대로 약전골목 인근의 긴 골목이라는 뜻을 가진 '진골목'이다. 골목 안 건축물들엔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도 있다. 한번쯤 이 집 주인이 달성 서씨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
100년도 훨씬 전에 세워진 고택도 서씨 성을 가진 집 주인이 지었다. 그리고 이 집에 지난 2022년 스타벅스가 문을 열었다.
건축의 역사 보여주는 서씨 집성촌
고려시대부터 서씨는 대구에 정착한 지방 호족이었다. 조선시대엔 서씨 일가의 땅을 밟아야 과거길을 가는 옛 영남대로를 지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 중 진골목은 우리나라 여성 운동의 효시로 꼽히는 '패물폐지부인회의 국채보상운동'이 탄생한 곳이면서 서씨의 집성촌이었다.
일제강점기 토지대장 기록에도 이 지역 집 주인 태반이 서씨였다. 당시 대구 최고 부자였던 서병국, 국채보상회 간부 서병규, 조선 국권 회복단에 참여한 서상규 등이 이 곳에 살았다.
그리고 골목에 있는 건축물들은 한국의 근·현대 건축 역사를 담고 있다.
대표적인 건물이 1937년 지어진 '서병직 주택'이다. 지금도 '정소아과의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이 건물은 서병국의 방계형제인 서병직이 화교 건축가 모문금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2층 양옥에 연면적 634㎡ 규모로 대구 최초의 서양식 민간 주택이다.
1947년 고(故) 정필수 원장이 매입하면서 정소아과의원이 됐다. 62년간 환자를 진료한 병원은 정필수 원장이 90세가 되던 2009년 2월 문을 닫았다.
한 동안 닫혀 있던 저택은 2018년 정필수 원장의 큰 아들인 정진오 원장이 소아과 전문의로 근무하던 병원에서 퇴직한 뒤 정소아청소년과의원으로 재개원하면서 문을 열었다. 건물과 병원의 역사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 때 걸린 간판과 건물 형태는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던 정소아과의원은 2023년 다시 문을 닫았다. "저출산 극복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정진오 원장이 청도보건소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병원 문은 닫았지만, 근대 주거용 양옥 양식은 여전히 만나볼 수 있다.
정소아과를 지나면 '서재균 고택'이라 불리는 한옥 가옥이 나온다. 서병국 사촌인 서우순이 1897년 지은 이 집은 집안 일을 하던 사람들의 거처인 행랑채, 남성이 쓰는 사랑채, 여성들이 사용하는 안채와 창고, 안마당으로 이뤄졌다.
현재 남겨진 구조물은 1919년 세워진 안채 뿐인데도 남향 배치에 수평 구조, 통풍을 고려한 공간은 무더운 대구의 여름 날씨에 대응하기 위한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서재균 고택은 시대를 담고 있다. 당시 들어온 서양 가옥의 특징이 전통 한옥에 접목됐다.
정면 7칸, 측면 3칸짜리인 안채는 툇마루, 대청마루, 온돌방, 부엌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구조에 하나가 추가됐다. 안방에서 발견된 화장실이다. 전통 한옥의 밖에 있는 화장실을 이 고택은 서양 가옥처럼 안으로 가져왔다.
여기에 마당의 우물과 은행나무는 실용과 소박함을 중시하던 민가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의미 있는 이 고택은 거주하던 서우순의 손자 서재균이 작고한 뒤 한 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다.
##황토를 가져오고 기와를 얹었다
2018년 '서재균 고택'은 재건에 나섰다. 보수를 의뢰한 사람의 성은 서씨가 아닌 신씨였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구 글로벌메세나의 신홍식 회장이다. 서재균 고택은 산업화와 함께 도로가 생기면서 다른 구조물들은 사라진 상태였다. 남은 건 훼손된 안채 뿐이었다.
'서재균 고택'에서 만난 집 주인 신 회장은 "(매입 당시) 상업중심 지역이라 건설사가 13층 건물을 지으라며 가설계도까지 가져와 설득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의 결정은 보존이었다.
신 회장은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 건축이라 생각했다. 이 자리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골목의 맥은 끊기고 진골목은 사라진다"는 설명도 했다.
대지면적 749.2㎡(226평)에 남아 있는 안채와 함께 과거 규모대로 복원하기로 했다. 공사는 쉽지 않았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었어요."
보수를 맡은 거송한옥고건축의 임봉빈 대표의 서재균 고택에 대한 첫 기억이었다.
파이낸셜뉴스와의 통화에서 임 대표는 "대들보는 부러져 밑으로 처져 있었고 지붕의 일부분도 내려 앉아 있었다"고 보수 전 안채의 상황을 전했다.
임 대표는 3개월간 안채 보수에 매달렸다. 재료는 황토, 대나무 등 전통 소재를 고집했다. 전통 한옥 건축 방식으로 기둥과 보를 세우고 구운 기와를 올렸다.100년의 시간을 보낸 기왓장은 지금도 마당 옆 돌담 위에 얹혀져 있다.
이 기간 새로운 공간도 마련됐다. 고택 앞 마당 건너편에 세워진 한옥 양식의 건축이었다. 신축한 한옥과 고택은 건축면적 각각 219.51㎡, 61.32㎡ 크기로 자리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고택과 신축 한옥은 모양새를 달리했다. 고택은 옛 모습 그대로 팔작 지붕을 유지했고 신축 한옥은 중앙대로 쪽으로 출구를 내면서 대문인 솟을대문 역할을 하도록 맞배지붕을 썼다.
맞배지붕은 위에서 봤을 때 삼각 모서리가 앞·뒷면만 있는 단순한 형태의 지붕이다. 팔작지붕은 맞배지붕과 건물 사면에 지붕면이 존재하는 우진각지붕을 결합한 형태다. 궁궐·사찰·중상류 주택 등에 흔히 쓰인다.
공사를 마친 서재균 고택은 '1919 한국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카페와 한정식집도 운영됐다.
이후 건물의 가치를 알아본 스타벅스가 신 회장에게 임대를 요청했고 2022년 10월 20일, 스타벅스 대구종로고택점이 문을 열었다.
##대구의 역사를 지킨 키다
스타벅스는 경주대릉원점 등 전통 한옥의 모양새를 띈 매장이 있기는 했지만, 그저 한옥을 흉내낸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기존에 있던 진짜 한옥 건물에 스타벅스가 들어선 건 이곳이 처음이었다.
공간은 야외 정원을 조망할 수 있는 고택 한옥, 음료를 제조하는 '바'와 감각적인 아트웍으로 구성된 현대식 한옥 그리고 야외 정원으로 구분해 꾸몄다. 약 120석에 달하는 좌석은 공간에 따라 전통과 현재를 경험할 수 있다.
안채인 고택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마루의 형태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40석에 가까운 좌식 공간을 마련해 한옥의 정취를 느끼도록 했다. 보와 종보,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한옥의 정취가 느껴진다.
마당을 볼 수 있도록 창호문이 있던 곳은 통창을 넣었다. 고택 뒤편 굴뚝이 보이는 쪽마루에도 좌석을 설치해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쪽마루에 앉아 음료를 마시던 직장인 권모씨(35)는 "굴뚝이 보이고 대나무가 있는 쪽마루는 한적하게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특별한 경험을 주는 듯 하다"고 말했다.
100년도 더 된 고택과 현대식 한옥 사이 마당에선 물 소리가 들리는 우물,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보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테이블을 마련했다. 신축 한옥에는 음료를 제조하는 공간, 고객 공간이 함께 있다. 한국적 감성을 담아 사이렌이 헤엄치는 듯한 모습의 대형 아트웍도 설치했다.
스타벅스는 공간을 구성하면서 집주인인 신 회장과 협의의 과정도 거쳤다. 먼저 8m 깊이의 우물이다.
신 회장은 "깊은 우물 속 샘이 정말 예쁘다. 물이 퐁퐁퐁 올라온다"며 "스타벅스에 꼭 남겨 줄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안전이었다. 인명 사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중간에 구조물을 넣고 그 위에 돌을 깐 뒤 물이 흐르게 했다. 물 소리가 들려 우물의 느낌을 잃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에겐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지만, 스타벅스로선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마당의 잔디를 그대로 남겨달라는 집 주인의 요청에도 수정이 필요했다. 신축 한옥에서 음료를 받아 고택으로 이동하는 손님과 직원의 안전을 고려해야 했다. 이동 동선에 맞춰 디딤돌을 깔아 이동을 편리하게 했다.
스타벅스의 노력은 또 있다. 고택에 맞게 '사이렌' 로고는 목재로 만들었고 진골목 쪽 출입문에는 한글 '스타벅스'를 문패로 걸었다. 아궁이도 그대로 뒀다.
대구가 우리나라 고전 음악 감상실의 발상지이자 문화 예술 도시인 점에 착안해 명품 오디오 브랜드인 뱅앤올룹슨과 협업해 고택을 음악 감상을 위한 최적의 공간으로 구축했다.
효과는 좋았다. 입소문을 타면서 평일 오전엔 인근 직장인과 주민들이 찾았고 오후나 주말이면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외지인들이 방문했다. 손님들의 평균 연령도 33.5세로 젊다.
임 대표는 "개발논리로 한옥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대구종로고택점처럼 많은 이들이 한옥을 경험하는 다양한 곳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음에 가볼 곳은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마을인 북촌과 서촌의 한옥에 자리한 카페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