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경력'의 붕괴… 대리보다 프롬프트 한 줄이 낫다
선진국 일자리 60% 흔들… "사무직이 가장 먼저 날아간다"
노동절의 역설… 내 일자리를 뺏는 자본의 '지분'을 사라
선진국 일자리 60% 흔들… "사무직이 가장 먼저 날아간다"
노동절의 역설… 내 일자리를 뺏는 자본의 '지분'을 사라
[파이낸셜뉴스] 5월 1일 근로자의 날 오후. 늦잠을 자고 일어나 소파에 기대어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달콤하다.
출근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평일의 여유. 하지만 40대 김 과장의 머릿속은 묘하게 복잡하다. 지난 금요일 퇴근 직전, 며칠 밤을 새워야 할 방대한 데이터 취합 업무를 챗GPT에 던져주고 단 10분 만에 끝냈을 때 느꼈던 그 기묘한 감각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이렇게 쉬고 있는데, 저 녀석은 노동절에도 쉬지 않고 진화하고 있겠지."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의 가치를 기리는 5월 1일.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 3040 화이트칼라들은 '내 노동의 가치'가 무서운 속도로 감가상각되고 있다는 서늘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 멈춘 출근길, 멈추지 않는 AI의 '무급 24시간'
인류가 피 흘려 쟁취한 주 40시간 노동, 휴일 수당, 그리고 노동절이라는 성역은 인공지능(AI) 앞에서 무의미하다.
통계는 이 체감을 정확한 지표로 증명한다. 올해 초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AI는 전 세계 일자리의 40%, 특히 한국과 같은 선진국 일자리의 무려 60%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앞서 골드만삭스 역시 생성형 AI로 전 세계 3억 개의 일자리가 자동화될 것이며, 미국 내 행정직의 46%, 법률직의 44%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 경고했다.
육체노동자보다 화이트칼라 사무직의 밥그릇이 먼저 깨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 15년 차의 '경력', 15초 만에 붕괴하다
이 위협이 유독 3040 중간 관리자들에게 가혹한 이유는 그들이 믿어왔던 방어막이 뚫렸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10년, 15년 회사에서 구르며 쌓은 이른바 '경험과 노하우'가 곧 몸값이자 생존의 무기였다. 기획서를 그럴싸하게 다듬고, 방대한 자료를 요약하는 능력은 대리, 과장급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AI는 그 15년의 경험을 단 15초 만에 완벽한 텍스트와 프레젠테이션으로 찍어낸다.
어설픈 중간 관리자의 문서 작업 능력보다, 똑똑한 신입사원이 AI에 던지는 '프롬프트(명령어)' 한 줄이 훨씬 더 생산성이 높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리처드 볼드윈(Richard Baldwin) 제네바 국제대학원 교수가 남긴 "AI가 당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는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대체할 것"이라는 경고는, 현재 직장 내에서 나의 낡은 노동력이 언제든 도태될 수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짚어낸다.
◆ 노동의 종말… '대체'될 것인가, '지분'을 가질 것인가
그렇다면 분노하고 절망할 것인가. 이 거대한 산업 혁명 앞에서 '내 일자리를 보장하라'며 시위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확률이 높다. 감정을 덜어내고 냉정하게 판을 읽어야 한다.
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이다. 노동을 대체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으는 '자본의 편'에 서는 것이다. 나를 위협하는 글로벌 AI 혁명 주도 기업들의 지분을 꾸준히 사 모으는 일. 그것이 낡아가는 나의 노동력을 방어할 유일한 금융 자산이자 '생존 지렛대'다.
2026년의 근로자의 날,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오늘 하루 편하게 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고 늙어가지만, 내 자본은 168시간 내내 스스로 일하며 불어나고 있는가. AI의 무급 노동에 포위된 3040 세대가 노동절 오후에 던져야 할 가장 섬뜩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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