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불혹(不惑),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은 '호르몬'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16 07:00

수정 2026.05.16 07:00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불혹(不惑),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은 '호르몬'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쿠싱증후군 환자들의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검사해보면 남성과 여성이 다른 양상을 보인다.



1977년의 연구를 보면 쿠싱증후군을 가진 여성 환자들은 모두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정상보다 높았고, 남성환자들은 모두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정상보다 낮았다. 여성 환자들은 무월경과 다모증의 증상을 보였고, 남성환자들은 상당수가 성욕감퇴와 발기부전을 호소했다.

어째서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높아지고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낮아지는 걸까?
과도한 코르티솔 분비가 왜 여자의 남성화와 남자의 불임을 초래하는지 알려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과학자들이 의심하는 것은 부신이다. 여성에게 부신은 자궁과 더불어 테스토스테론의 주요 생산 기관이다. 반면에 남성은 주로 고환에서 테스토스테론을 생산하고 부신에서 생산하는 양은 적다. 뇌하수체 종양에 의해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과다하게 생산되면 여성은 코르티솔뿐만 아니라 부신피질에서 생산되는 모든 호르몬의 분비가 높아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간다.

반면에 남성은 부신피질이 자극을 받아도 생식샘에서 워낙 많은 테스토스테론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전체 테스토스테론 수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코르티솔의 직접적 영향을 받아 인체의 여러 기능이 저하되면서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쿠싱증후군에서 관찰되는 여성의 남성화는 부신피질자극호르몬 과다로 인한 코르티솔과 남성호르몬의 동반상승이 원인이고, 남성의 성기능 악화는 코르티솔의 직접적 작용으로 인한 남성호르몬의 감소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원인도 있다. 쿠싱증후군으로 인해 불어난 지방세포와 피부세포가 약한 안드로겐을 강력한 안드로겐으로 변환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부세포, 특히 피지샘 내에 있는 피지분비세포는 디하이드로에피안드로스테론(dehydroepiandrosterone·DHEA)이나 안드로스텐다이온(androstenedione)과 같은 안드로겐을 테스토스테론과 DHT로 전환시킨다. 지방세포 역시 효소의 작용에 의해 안드로스텐다이온을 테스토스테론으로 효과적으로 전환시킨다.

이로 인해 남녀 모두 피지 분비량이 많아지고 여드름이 폭발한다. 여성의 경우 이것이 혈액으로도 유입하여 남성호르몬 수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

필자가 쿠싱증후군이라는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성기능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스트레스가 그만큼 무섭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성기능 저하는 중년부터 시작되는 성호르몬의 감소로 인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스트레스에 의해 더욱 빠르게 저하된다.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높은 코르티솔 분비는 남성에겐 남성호르몬의 분비를 저하시키고 여성에겐 여러 호르몬 분비에 교란을 일으켜 갱년기를 더욱 앞당긴다. 여기에 스트레스로 인한 비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 심장질환 등이 겹쳐지면 성기능뿐만 아니라 중년의 건강 전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

실제로 연령별 코르티솔 분비 그래프와 연령별 성호르몬 분비 그래프는 완전히 반대다. 코르티솔 분비는 40대를 기준으로 높이 상승하고, 성호르몬은 40대를 기준으로 가파르게 하락한다.

코르티솔의 상승과 성호르몬의 하락은 '노화'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생식기능의 쇠퇴'로도 설명할 수 있다. 생명체의 생식기능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기능은 생명체의 건강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중년 이후의 성기능 저하는 자연의 섭리이므로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잘 관리한다면 급격한 저하를 막을 수 있으며 인체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갱년기에 서서히 연착륙할 수 있다.

바쁜 생활 중에도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수시로 가져야 한다. 특히 살이 찌지 않도록 유의하고, 담배를 멀리하고, 술을 줄이고, 잠을 잘 자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것은 코르티솔 분비가 과잉이 되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정신과 육체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공자는 40세에 불혹하였고 50세에 지천명하였다. 40세부터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50세부터는 하늘의 명령, 즉 우주의 보편적 원리를 이해했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 표현이 건강관리에도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40대부터는 술, 담배, 식탐 등 무절제한 생활습관을 철저히 멈추고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너무 화내지도 너무 기뻐하지도 말고 평정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우주의 섭리대로 편안하게 나이를 먹어야 한다.
40~50대를 현명하고 알차게 보내면 훨씬 건강하고 풍요로운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