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태어날 때부터 치아가 있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일부 영구치가 제대로 나지 않는 희귀 증상을 겪은 의사가 자신의 가족에게 5대째 이어진 원인을 찾아냈다. 150년 넘게 이어진 가족의 '빠진 치아' 미스터리는 유전자 분석 끝에 특정 변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는 지난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더스-사이나이 의료센터의 의학유전학·소아과 교수인 존 그레이엄 박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레이엄 박사는 대부분의 신생아와 달리 태어날 때 이미 몇 개의 치아가 있었다. 이 치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빠졌지만, 이후 성인 치아가 그 자리를 제대로 채우지 않았다.
이런 증상은 선천적으로 치아가 일부 또는 다수 생기지 않는 '치아무형성'으로 불린다. 그레이엄 박사는 청소년기와 성인기를 거치며 여러 차례 치과 임플란트 치료를 받았다. 문제는 그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와 외가 형제들, 자녀와 손주들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5대에 걸쳐 이어진 빠진 치아
가족력이 뚜렷했던 만큼 원인은 유전자로 의심됐다. 의대 졸업 뒤 그레이엄 박사는 자신과 가족에게 이어진 증상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2010년 무렵 유전체 분석 도구로 염색체 1번의 긴 구간이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후보 변이가 300개 넘게 나와 원인을 좁히기 어려웠다.
이후 그레이엄 박사가 은퇴를 준비하던 시기, 그의 제자였던 페드로 산체스 박사가 연구를 이어갔다. 산체스 박사 연구팀은 증상이 있는 가족 2명과 증상이 없는 가족 2명의 유전체를 비교해 빠진 치아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변이를 찾았다.
원인은 KDF1 유전자의 변이였다. 이 유전자는 피부와 치아 발달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데 관여한다. 연구팀은 가족 21명의 유전자를 추가 분석했고, 해당 변이가 증상이 있는 11명에게서 확인됐고 증상이 없는 10명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KDF1 유전자는 피부와 치아처럼 몸의 바깥층 조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다.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치아가 정상적으로 형성되거나 뿌리가 자라는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가족 사례에서 KDF1 변이가 선천치와 영구치 결손, 치근 발달 이상과 관련된 것으로 봤다.
치료법은 없지만 진단 길 열려
연구팀은 이 변이가 KDF1 단백질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치아 발달 기능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 연구는 2025년 국제학술지 'International Dental Journal'에 실렸다. 논문은 1874년 태어난 첫 세대부터 5대에 걸쳐 선천치, 치아무형성, 치근 발달 이상이 이어진 가족 사례를 다뤘다.
치아무형성 자체를 되돌리는 치료법은 아직 없다. 다만 원인 변이를 찾으면 가족 내 조기 진단과 치료 계획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치아가 없는 문제는 단순히 외모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치아가 없으면 씹기와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치료하지 않으면 삶의 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선천성 치아 결손 사례는 보고돼 있다. 대한소아치과학회지에는 전신질환이 없는 환아에게 여러 영구치가 선천적으로 결손된 사례가 2006년 보고됐다. 논문은 선천성 치아 결손이 1개 이상 치아가 태어날 때부터 없는 치아 발육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미국 가족 사례처럼 5대에 걸쳐 특정 KDF1 유전자 변이와 연결된 사례는 별도로 봐야 한다.
한편 산체스 박사는 이번 발견이 보험 적용 논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임플란트를 단순 미용 목적이 아니라 선천성 질환 치료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그레이엄 박사 가족에게는 오랜 의문에 대한 답이 됐고, 비슷한 증상을 겪는 가족들에게는 더 빠른 진단 가능성을 남겼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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