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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 열고 이란 조인다…트럼프의 이중 압박 전략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04 10:50

수정 2026.05.04 14:40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상선과 유조선들을 구출하겠다고 밝히며 승부수를 던졌다.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통제권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과시하는 동시에 이란 경제를 더욱 압박해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는 이란의 원유 저장 여력이 사실상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신호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선박 구출에 나선 것도 이란 경제의 한계를 지켜보며 시간을 벌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국제유가 급등을 억제하면서 대이란 압박은 유지하는 이중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협상 교착 속 꺼내든 '호르무즈 해방작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주말 사이 제시한 14개 항의 평화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직후 호르무즈 개방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란은 중동 내 미군 철수, 봉쇄 해제, 이란 자산 동결 해제, 전쟁 배상금 지급, 레바논 헤즈볼라를 포함한 전선의 전쟁 종식, 호르무즈 해협의 새로운 통제 메커니즘 구축 등을 담은 종전안을 미국에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에 갇힌 유조선과 상선을 빼내기 위한 작전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은 협상력을 높이는 동시에 국제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는 직간접적으로 2000여척의 선박이 묶여 있으며, 230척이 넘는 유조선이 원유 적재를 위해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국제유가는 소폭 하락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4일 오전 8시35분(한국시간) 기준 전장 대비 0.41% 하락한 배럴당 107.73달러를 기록했다. 한때 105.55달러까지 떨어졌으나 낙폭을 일부 만회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도 전장 대비 0.64% 하락한 배럴당 101.29달러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99.11달러까지 떨어지며 배럴당 100달러선을 밑돌기도 했다.

"이란 저장 한계 임박"…시간 벌기에 들어간 미국

미국은 이란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이 원유 저장 공간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송유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송유관이 폭발하면 절대 예전처럼 복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이날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의 봉쇄로 인해 이란의 원유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곧 유정을 폐쇄해야 할 상황이며 다음 주에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란은 앞으로 1~2주 안에 원유 생산량 감축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 육상 저장시설의 현재 가동률은 약 60% 수준이며 저장량은 5000만배럴을 넘고 총 저장 가능 용량은 8600만배럴 수준으로 분석됐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FGE 넥스턴트ECA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저장 용량 제약으로 인해 이란이 6월 중순부터 원유 생산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이란은 폐기 직전의 원유 저장시설까지 다시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주 백악관에서는 미국과 이란 가운데 누가 더 큰 협상 지렛대를 쥐고 있는지를 놓고 집중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일부 참모들은 해상 봉쇄를 두 달가량 더 유지할 경우 이란 에너지 산업에 장기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유 생산시설은 가동과 중단을 반복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생산 중단이 길어질 경우 유전 손상과 막대한 복구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작전은 상당한 위험도 안고 있다. 작전이 성공할 경우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실질적 주도권을 확보하며 사실상 완전 개방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 경우 이란은 협상장에서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이란이 선박 통행을 다시 차단하거나 군사적 반격에 나설 경우 휴전 국면이 깨지면서 전면전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해방작전'이 종전 협상의 돌파구가 될지, 또 다른 충돌의 불씨가 될지는 향후 이란의 대응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