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대서양을 항해하던 여객 크루즈선에서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하는 '한타바이러스(Hantavirus)' 집단 감염 의심 사례가 발생해 전 세계 보건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현재까지 3명이 목숨을 잃고 추가 감염자가 나오면서 세계보건기구(WHO)도 즉각적인 조사에 나섰다.
4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WHO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근 해상을 지나던 네덜란드 선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에서 최소 한 건의 한타바이러스 확진 사례가 발생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첫 번째 희생자인 노인 남성이 선상에서 사망한 뒤 아내 역시 병원에서 숨졌으며, 또 다른 확진자 1명은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
보건 당국이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한타바이러스의 치명성 때문이다.
호흡기 덮치는 HPS vs 신장 망가뜨리는 HFRS
한타바이러스는 들쥐, 집쥐 등 설치류를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 군(群)이다. 바이러스의 종류와 발생 지역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심각한 질환을 유발한다.
첫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주로 발생하는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HPS)'이다. 이번 크루즈선 사태나 지난해 미국 뉴멕시코에서 할리우드 배우 고(故) 진 해크먼의 아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폐에 체액이 차오르면서 극심한 호흡 곤란을 유발하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치사율이 무려 38%에 달한다.
둘째는 아시아와 유럽에서 주로 나타나는 '신증후군출혈열(HFRS)'이다. 국내에서는 과거 '유행성출혈열'로 불렸으며, 한국의 이호왕 박사가 세계 최초로 원인 바이러스(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해 유명해졌다. 발열, 출혈과 함께 신장(콩팥)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며 방치할 경우 신부전으로 사망할 수 있다.
쥐 배설물 마르면 '공기 중'으로…사람 간 전파는 드물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전파 경로다. 한타바이러스는 감염된 쥐의 배설물, 소변, 타액 등에 섞여 배출된다. 이 배설물이 건조되면서 바이러스가 공기 중의 먼지와 함께 섞이고, 사람이 숨을 쉴 때 호흡기를 통해 폐로 들어가면서 감염이 일어난다. 쥐에 직접 물리지 않더라도, 쥐가 머물렀던 밀폐된 창고나 헛간을 청소하며 먼지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처럼 감염된 사람의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파되는 경우는 남미의 극히 일부 바이러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기인 줄 알았다가 급격히 악화…예방이 '최선'
초기 증상은 발열, 근육통, 두통, 오한, 피로감 등 심한 독감이나 감기와 비슷해 조기 발견이 어렵다. 하지만 수일 내에 기침과 함께 숨이 가빠오거나(HPS),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소변량이 급감하는(HFRS) 등 중증으로 급격히 진행된다.
가장 큰 문제는 바이러스를 직접 사멸시키는 항바이러스제나 완치법이 아직 없다는 점이다. 환자의 호흡을 돕기 위해 산소 호흡기를 달거나 신장 기능 유지를 위해 투석을 하는 등 증상을 완화하는 '보존적 치료'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감염 의심 즉시 중환자실 수준의 집중 치료를 받는 것이 생존율을 높이는 유일한 길이다.
의료 전문가들은 "한타바이러스는 치료제가 없는 만큼 쥐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예방이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야외 활동 시에는 쥐의 배설물이 있을 만한 풀밭에 눕지 말고, 쥐가 출몰하는 창고나 다락방을 청소할 때는 빗자루나 진공청소기 대신 소독액을 묻힌 물걸레를 사용해 먼지가 날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또한 작업 시에는 반드시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후에는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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