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조현병 치료, '침'이 구원투수 될까… 약물 부작용 56% 뚝 [언박싱 연구실]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07 05:56

수정 2026.05.07 05:56

<34> 경희대 조성훈 교수팀, 4256명 데이터 분석… 증상 개선 돕는 '든든한 조력자' 입증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조현병 환자의 표준 약물 치료에 병행하는 침 치료가 뇌 신경계의 안정과 증상 개선에 기여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모습이다. 4256명의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입증된 침 치료의 보조적 가치는 환자들이 약물 부작용의 고통을 덜고 일상을 되찾는 데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조현병 환자의 표준 약물 치료에 병행하는 침 치료가 뇌 신경계의 안정과 증상 개선에 기여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모습이다. 4256명의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입증된 침 치료의 보조적 가치는 환자들이 약물 부작용의 고통을 덜고 일상을 되찾는 데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파이낸셜뉴스] 조현병은 환청이 들리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믿는 망상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마음의 병이다. 보통 병원에서는 먹는 약(항정신병 약물)으로 치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약이 워낙 강하다 보니 몸이 떨리거나 입이 마르는 등 부작용 때문에 치료를 중도에 포기하고 싶어 하는 환자들이 많다.

최근 경희대학교 조성훈 교수는 이런 환자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기존 약물 치료에 '침 치료'를 함께하면 치료 효과는 높아지고, 환자를 힘들게 했던 부작용은 줄어든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전 세계 4256명의 치료 기록을 열어보니

연구팀은 침 치료의 실질적인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발표된 55개의 연구 자료를 수집했다. 이 연구들에 참여한 환자 수는 총 4256명에 달하며,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 및 한국한의학연구원과 함께 이 방대한 데이터를 정밀 분석했다.

연구팀이 '약만 먹는 그룹'과 '약과 침 치료를 병행하는 그룹'을 비교 분석한 결과, 침 치료를 함께 받은 환자들은 여러 지표에서 훨씬 우수한 성적표를 거뒀다. 우선 환청이나 망상 같은 '양성 증상'은 물론, 의욕 저하와 감정 둔마를 뜻하는 '음성 증상' 모두 약만 복용할 때보다 더 뚜렷하게 호전됐다. 또한 일상생활 적응 정도를 보여주는 점수(PSP)도 약 6.47점이나 높게 나타나 사회 복귀 가능성을 높였다. 가장 주목할 점은 부작용 감소다. 환자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이상반응 발생 위험이 침 치료 병행 시 약 56%(위험비 0.44)나 낮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침의 자극일까, 마음의 안정일까

그런데 연구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발견됐다. 진짜 침과 가짜 침(피부를 찌르지 않는 침)을 맞은 집단을 비교했을 때, 두 집단 사이의 증상 개선 효과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수치상으로는 진짜 침의 결과가 조금 더 좋았지만, 과학적으로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결론짓기에는 근거가 부족했다. 이는 침의 물리적 자극 못지않게 치료 과정에서 의사와 소통하며 정성 어린 케어를 받는다는 느낌이 환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국 침 치료의 효과 중 상당 부분이 '심리적 안정'이나 '돌봄'과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연구의 핵심적인 발견이다.

■더 나은 치료를 향한 발걸음

다만 연구팀은 침 치료와 저용량 약물을 병행하는 전략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분석 결과, 침과 저용량 약물을 함께 쓰는 것이 표준 용량의 약을 단독으로 먹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연구의 진짜 알맹이는 침 치료가 약물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지만, 환자들이 겪는 부작용 고통을 줄여줌으로써 치료를 포기하지 않게 돕는 '든든한 조력자'로서 가치가 크다는 점이다.


어려운 과학 논문 속 수치들이 결국 환자들의 편안한 일상을 향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오늘 언박싱한 연구의 진면목이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