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경희대 조성훈 교수팀, 4256명 데이터 분석… 증상 개선 돕는 '든든한 조력자' 입증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최근 경희대학교 조성훈 교수는 이런 환자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기존 약물 치료에 '침 치료'를 함께하면 치료 효과는 높아지고, 환자를 힘들게 했던 부작용은 줄어든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전 세계 4256명의 치료 기록을 열어보니
연구팀은 침 치료의 실질적인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발표된 55개의 연구 자료를 수집했다. 이 연구들에 참여한 환자 수는 총 4256명에 달하며,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 및 한국한의학연구원과 함께 이 방대한 데이터를 정밀 분석했다.
연구팀이 '약만 먹는 그룹'과 '약과 침 치료를 병행하는 그룹'을 비교 분석한 결과, 침 치료를 함께 받은 환자들은 여러 지표에서 훨씬 우수한 성적표를 거뒀다. 우선 환청이나 망상 같은 '양성 증상'은 물론, 의욕 저하와 감정 둔마를 뜻하는 '음성 증상' 모두 약만 복용할 때보다 더 뚜렷하게 호전됐다. 또한 일상생활 적응 정도를 보여주는 점수(PSP)도 약 6.47점이나 높게 나타나 사회 복귀 가능성을 높였다. 가장 주목할 점은 부작용 감소다. 환자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이상반응 발생 위험이 침 치료 병행 시 약 56%(위험비 0.44)나 낮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침의 자극일까, 마음의 안정일까
그런데 연구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발견됐다. 진짜 침과 가짜 침(피부를 찌르지 않는 침)을 맞은 집단을 비교했을 때, 두 집단 사이의 증상 개선 효과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수치상으로는 진짜 침의 결과가 조금 더 좋았지만, 과학적으로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결론짓기에는 근거가 부족했다. 이는 침의 물리적 자극 못지않게 치료 과정에서 의사와 소통하며 정성 어린 케어를 받는다는 느낌이 환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국 침 치료의 효과 중 상당 부분이 '심리적 안정'이나 '돌봄'과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연구의 핵심적인 발견이다.
■더 나은 치료를 향한 발걸음
다만 연구팀은 침 치료와 저용량 약물을 병행하는 전략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분석 결과, 침과 저용량 약물을 함께 쓰는 것이 표준 용량의 약을 단독으로 먹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연구의 진짜 알맹이는 침 치료가 약물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지만, 환자들이 겪는 부작용 고통을 줄여줌으로써 치료를 포기하지 않게 돕는 '든든한 조력자'로서 가치가 크다는 점이다.
어려운 과학 논문 속 수치들이 결국 환자들의 편안한 일상을 향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오늘 언박싱한 연구의 진면목이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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