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기와 아래 볕이 드는 중정…한옥, 핸드드립을 다도로 만드는 곳 [커피와 공간 '끽(喫)']

서윤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10 13:35

수정 2026.05.10 15:03

[블루보틀 삼청한옥점 이야기]
양반 등 대표 주거지인 북촌…20세기 초 집단 공급한 한옥 900여 채
세계적 디자이너 양태오…도시형 한옥에 전통·현대적 감각 담을 고민
중정에 철쭉, 항아리 담은 네모난 정원…일본식 '젠 정원' 오해사기도
"한국식 전통 정원"…환대의 마음을 전하는 공간 지나면 내부로 이동
특별한 메뉴에 드리퍼 등 특별한 기물 사용…머무는 공간으로 만들어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골목길 깊숙한 곳에 자리한 블루보틀 삼청한옥점은 로고가 표시된 간판이 없으면 찾아가기 어렵다. /사진=서윤경 기자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골목길 깊숙한 곳에 자리한 블루보틀 삼청한옥점은 로고가 표시된 간판이 없으면 찾아가기 어렵다. /사진=서윤경 기자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글을 쓰고 피카소는 예술을 말하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끼익'.

나무 대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자 햇빛이 들어찬 23평짜리 소박한 공간이 보인다.

'ㄷ'자형 기와지붕 아래 중정에 폭 안긴 듯 네모난 정원이 자리했다. 이끼와 고사리, 산철쭉에 항아리가 놓인 정원은 햇빛을 받아 마치 화선지 위 그림과 같다.

정원 너머 나무 창틀 뒤에선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거름종이를 거쳐 커피 떨어지는 소리다. 이어 공간을 채우는 커피 향. 이곳은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이 2019년 문을 연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삼청한옥점이다.

골목 끝에서 만나는 삼청한옥

국립현대미술관 맞은편 블루보틀 삼청점 앞으로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왼쪽). 삼청점 2층과 3층에 오르면 북촌마을 한옥집 기와집들을 볼 수 있다. 블루보틀 삼청한옥점의 기와 지붕(오른쪽 사진 속 오른쪽)도 보인다. /사진=서윤경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맞은편 블루보틀 삼청점 앞으로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왼쪽). 삼청점 2층과 3층에 오르면 북촌마을 한옥집 기와집들을 볼 수 있다. 블루보틀 삼청한옥점의 기와 지붕(오른쪽 사진 속 오른쪽)도 보인다. /사진=서윤경 기자

삼청한옥점이 자리한 소격동은 조선시대 왕실 제사를 담당하던 소격서가 있던 곳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낮은 기와지붕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이어지는 이곳은 전통과 현대가 밀도 높게 공존하는 북촌한옥마을이다.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 북쪽에 위치해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 양반과 고위 관료들이 거주한 대표적인 주거지로 현재 약 900여 채의 한옥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촌 풍경을 이루는 대부분의 한옥은 1930년대를 전후해 형성된 '도시형 한옥'이다. 당시 서울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 속에서 주택경영회사들이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며 집단 공급한 한옥들이다. 낮은 지붕 경사와 겹처마, 유리문과 함석 차양 등의 요소는 전통 한옥의 형태에 함께 남겨진 근대 도시 주거의 흔적이다.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가 블루보틀로부터 디자인 제안을 받은 삼청한옥점 역시 이런 도시형 한옥 중 하나였다.

양 대표는 "1900년대 초반 일본 건축가가 설계한 한옥이었다"며 "처음 봤을 때 이곳은 시멘트로 마감된 중정과 정리되지 않은 동선 등 한옥 특유의 미감이 상당 부분 사라진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의 방향은 여기서 시작됐다. 그는 "일제강점기로 흐름이 끊기지 않고 한옥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23평 한옥에 담아낸 '환대'

블루보틀 삼청한옥점을 디자인한 태오양스튜디오 양태오 대표가 공간의 핵심으로 꼽은 중정의 정원. /사진=서윤경 기자
블루보틀 삼청한옥점을 디자인한 태오양스튜디오 양태오 대표가 공간의 핵심으로 꼽은 중정의 정원. /사진=서윤경 기자

삼청한옥점은 단순한 카페를 넘어 '한옥이라는 문화 공간 안에서 커피 경험을 재해석한 장소'에 가깝다.

양 대표는 "그저 카페 인테리어가 아닌 지역의 기억과 정서를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경험을 담아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23평 규모의 비교적 작은 공간이지만 한옥의 'ㄷ'자 구조를 활용해 실제보다 훨씬 깊고 아늑한 공간감을 구현했다.

공간의 핵심은 중정이다. 대문을 지나면 마사토와 디딤돌, 나무와 흙이 어우러진 작은 정원이 펼쳐진다. 전통 정원의 '사각 연못'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고사리, 이끼, 산철쭉 같은 한국 토착 식물과 공예 작가 윤준호의 분청 항아리가 놓여 있다.

양 대표는 중정을 "가장 먼저 환대의 마음을 전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방문객은 중정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공간의 호흡을 느끼게 된다. 전통 한옥 사랑방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방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결과다.

블루보틀 삼청한옥점의 돌벽에 블루보틀 로고가 새겨져 있다. /사진=블루보틀 코리아 제공
블루보틀 삼청한옥점의 돌벽에 블루보틀 로고가 새겨져 있다. /사진=블루보틀 코리아 제공

모든 방은 중정을 향해 열려 있고 내·외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됐다.

재료도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선택했다. 자연석과 오래된 목재, 유리와 함석, 타일 등을 함께 사용해 근대 도시형 한옥의 맥락을 살렸다. 벽면에는 닥나무 한지에 옻칠을 더한 마감재를 썼고 창호에는 천 소재를 적용해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 투명 유리문을 활용해 중정과 실내 풍경이 서로 공명하도록 설계했다. 중정에 깔린 마사토는 햇빛을 반사해 실내 조도를 은은하게 높이는 역할도 한다. 전통 창을 통과한 빛은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싼다.

'환대'의 공간, 중정 속 숨은 이야기

일본 교토 료안지의 '일본식 젠(禪) 정원'./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 교토 료안지의 '일본식 젠(禪) 정원'./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청한옥 중정을 둘러싼 오해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사각 구조와 자갈, 식재 방식 등을 두고 '일본식 젠(禪) 정원'을 연상시킨다며 온라인에 올라온 일부 의견에 대해서다. 일본 정원 양식 중 하나인 젠 정원은 물을 거의 쓰지 않고 돌과 모래(또는 잔돌)로 산과 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양 대표는 "한국 전통 정원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오해"라며 "정갈하고 단정한 형태만 보고 일본식이라고 단정하는 시선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남 완도의 부용동정원과 경북 영양의 서석지 등을 사례로 들며 "한국 전통 정원에서도 사각 연못과 중정 구조를 쉽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이자 초대 국립중앙박물장을 지낸 고(故) 최순우 선생의 성북동 옛집 중정 마당도 이야기했다.

최순우 선생의 성북동 옛집 중정 마당. /사진=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홈페이지 캡처
최순우 선생의 성북동 옛집 중정 마당. /사진=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홈페이지 캡처

양 대표는 "성북동 중정처럼 삼청 한옥 중정도 전통 정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며 "항아리와 한국 토착 식물을 배치해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냈다"고 말했다.

분청 항아리에 대해서는 "항아리는 기다림을 상징한다"며 "시간이 지나 항아리 속 콩이 간장, 고추장이 되듯 한국인이 가진 시간과 순응의 태도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원과 한국 정원의 차이도 말했다.

양 대표는 "지진, 화산 등 예측불가능한 자연 환경에 노출된 일본은 젠 정원에 예측 가능한 자연인 돌, 대나무, 소나무 등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며 "반면한국 정원은 산과 숲 자체를 품는 '원림' 개념이 발달했다. 조금만 미니멀하고 깨끗하게 꾸며 놓으면 모두 일본식이라고 단정하는데 한국 전통 정원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커피를 경험하게 하는 공간

블루보틀 바리스타가 삼청한옥점 오픈과 함께 바 테이블 뒤 천 소재의 창호를 걷어 올리고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블루보틀 바리스타가 삼청한옥점 오픈과 함께 바 테이블 뒤 천 소재의 창호를 걷어 올리고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블루보틀 삼청한옥점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스페셜티 커피와 한국적 미학, 장인정신이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의 공간을 구현해 빠르게 소비되는 카페 문화 대신 '천천히 머무르는 감각'을 전달하고자 했다.

지난 7일 오전 11시 예약 시간에 맞춰 찾은 삼청한옥점의 '바'에 앉으니 바리스타가 커피와 디저트 등을 설명한다. 커피 추출 과정도 눈 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 이 매장은 예약제 기반으로 운영되지만, 빈 자리가 있다면 현장에서 바로 이용할 수 있다.

거의 볶지 않은 원두로 내린 웰컴 티 '씨드'. /사진=서윤경 기자
거의 볶지 않은 원두로 내린 웰컴 티 '씨드'. /사진=서윤경 기자

시작은 웰컴 티 '씨드(Seed·씨앗)'다. 거의 볶지 않은 커피콩으로 우려내 녹차처럼 연한 녹빛을 띠면서도 커피 나무의 꽃과 잎, 열매 풍미를 담고 있다.

필터 커피는 '파나마 핀타 데보라 인터스텔라 게샤'와 '에티오피아 구지 함벨라 G1 워시드' 등을 한 잔씩 정성스럽게 추출한다.

메종엠오(Maison M.O)와 협업한 디저트도 준비했다. 유자 크림을 더한 '비스퀴 드 사부아'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곁들여진 '모엘뢰 오 쇼콜라'다.

이밖에도 에티오피아에서 영감을 받아 향신료를 더한 '커피 크림 탑', 제주의 유기농 어린 찻잎으로 만든 '제주 오가닉 말차 라떼' 등 특별한 메뉴도 만날 수 있다.

바리스타의 제안으로 주문에 들어갔다. 맛 자체를 즐기기 위해 먼저 게샤를 주문했다. 강배전한 에티오피아 커피는 디저트 비스퀴 드 사부아와 페어링해 먹기로 했다.

삼청한옥점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내리고(왼쪽) 차선으로 말차를 격불하고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삼청한옥점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내리고(왼쪽) 차선으로 말차를 격불하고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커피를 마시는 모든 행위를 디자인의 일부로 바라본 점도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일부 기물은 삼청한옥점만을 위해 별도로 수급하거나 제작했다.

제주 말차를 격불해 제공하는 과정에는 '이악크래프트', '지승민의공기' 등 한국 공예 작가들의 기물이 사용된다. 신라 토기로 만든 조명과 오랫동안 앉아도 평안하도록 설계된 의자도 눈길을 끈다.

특히 커피를 내릴 땐 교토의 노포 철망 공방 '츠지와 카나아미'가 만든 철제 드리퍼를 이용한다. 장인이 손으로 철망을 엮어 만든 수공예품으로 따뜻한 물이 중심부로 천천히 주입되도록 설계됐다. 한 달 반 동안 5개만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시간과 공정이 필요하다.

제주 말차를 격불해 제공하는 과정에는 한국 공예 작가들의 기물(사진 위)이 사용되고 커피를 내릴 땐 교토의 노포 철망 공방 '츠지와 카나아미'가 만든 철제 드리퍼를 쓴다. /사진=서윤경 기자
제주 말차를 격불해 제공하는 과정에는 한국 공예 작가들의 기물(사진 위)이 사용되고 커피를 내릴 땐 교토의 노포 철망 공방 '츠지와 카나아미'가 만든 철제 드리퍼를 쓴다. /사진=서윤경 기자


블루보틀 관계자는 "삼청한옥점은 차별화된 메뉴와 이색적인 공간으로 색다른 블루보틀을 경험하는 데 활용돼 왔다"며 "8월까지 운영한 후 잠시 휴지기를 가진 뒤 10월부터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다시 만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공간을 디자인한 양 대표가 삼청한옥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소격동의 골목 끝에서 발견한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시간을 뛰어넘는 전통의 감성과 아름다움을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시길 바란다"며 "커피를 즐기며 전통 창을 통해 여과된 부드러운 빛과 중정의 풍경을 통해 정서적인 위안도 경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옥 안 커피의 경험은 북촌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은 서촌 한옥에 자리한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인텔리젠시아다.

/이미지=챗GPT
/이미지=챗GPT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