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종 CSULB 재무학과 종신교수
글로벌 빅테크들, 지분 확보에 목매지 않고
핵심 인력·기술·데이터 등 선별하는데 관심
미래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 선점이 목표
결과적으로 잠재적 경쟁자를 초기에 흡수
시장 진입장벽 높이고 혁신경쟁 기반 약화
지분구조 기반한 기업결합 심사 기준 한계
실질적 통제권 중심으로 규제 재설계 필요
지분 확보는 곧 경영권 장악을 의미했으며, 경영권은 다시 자산 처분과 조직재편에 대한 전면적 의사결정 권한으로 직결됐다. 즉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면 기업의 전략적 방향과 자산배분을 사실상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고, 이는 '소유가 곧 통제'라는 명제가 비교적 명확하게 성립하는 제도적·시장적 환경을 형성했다. 당시의 M&A는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소유권 이전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AI 시대, 지분보다 중요한 '잔여 통제권'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M&A 방식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 구조적 변화를 맞고 있다. AI 산업에서는 기업 가치의 핵심이 단순한 자산이나 현재의 수익이 아니라 데이터 축적 과정, 알고리즘의 개선 방향, 그리고 모델의 지속적 학습과 업데이트 능력에 있기 때문에 단순한 지분 인수만으로는 실질적인 전략적 통제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AI 시대의 M&A는 더 이상 소유권 이전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래의 핵심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을 선점하려는 통제권 경쟁으로 재편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201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올리버 하트의 불완전 계약(Incomplete Contracts) 이론을 통해 보다 명확히 설명될 수 있다. 불완전 계약 이론에 따르면, 현실의 계약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태를 사전에 완전히 명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특히 기술 변화가 빠르고 불확실성이 높은 산업일수록 이러한 한계는 더욱 두드러진다. AI 산업은 기술 발전 속도, 데이터 환경의 변화, 규제의 불확실성, 그리고 예기치 못한 활용 가능성 등으로 인해 미래 상태를 계약으로 완전히 규정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영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종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 즉 잔여 통제권(residual control right)이다. AI 기업의 맥락에서 잔여 통제권은 단순한 운영 권한을 넘어 모델의 발전 방향 설정, 데이터 활용 범위의 결정, 외부 개발자 및 파트너에게 기능을 어떤 방식과 범위로 개방할 것인지(API 공개 및 접근 정책), 상업화 전략, 나아가 윤리 및 안전 기준 설정과 같은 핵심적인 전략적 선택에 대한 권한을 의미한다. 따라서 AI 시대의 M&A는 형식적인 지분 확보보다 이러한 잔여 통제권을 누가 보유하고 행사하느냐에 따라 그 실질적 의미와 경제적 효과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빅테크의 새 무기 '그림자 인수'
한편 통제의 대상 역시 변화하고 있다. AI 산업에서 핵심 자산은 유형 자산이 아니라 고급 인력, 알고리즘, 학습 데이터, 그리고 축적된 암묵지(tacit knowledge)로 구성된다. 이들은 특정 조직의 운영 방식과 결합될 때 가치가 극대화되는 높은 자산 특수성을 지닌다. 예컨대 알고리즘은 공개된 코드만으로 경쟁우위가 형성되기보다 이를 운용하는 연구인력, 조직의 실험 프로세스, 연산 자원, 내부 의사결정 구조와 결합될 때 성과를 낸다. 이러한 특성은 외부 계약 관계에서 투자 유인을 왜곡하는 홀드업(hold-up)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며, 기업으로 하여금 핵심 자산을 내부 조직에 통합하려는 유인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분 취득 없이도 실질적 통제력을 확보하는 거래를 하나의 분석 개념으로서 '그림자 인수(Shadow Acquisition)'로 개념화할 수 있다. 이는 핵심 인력 영입, 기술 라이선스, 전략적 계약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비지분 기업결합의 한 형태이다. 전통적인 기업결합이 지분이나 자산의 소유권 이전을 전제로 하는 반면, 이러한 거래는 계약적 장치를 통해 사실상의 통제력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거래 방식이 확산되는 배경에는 기업의 전략적 유인이 존재한다. 전통적 기업결합은 규제 심사의 대상이 되며 상당한 시간과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반면 지분 취득 없이 인력과 기술을 확보하는 방식은 보다 유연하고 신속하게 핵심 자산을 통합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또한 외형상 독립된 기업 구조를 유지함으로써 경쟁제한에 대한 규제 리스크를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법적 소유권의 이전 없이도 경쟁주체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으며, 경제적 실질에서는 기업 통합에 준하는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전략은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재 및 기술 확보 방식에서도 관찰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4년 인플렉션AI 공동창업자를 포함한 핵심 연구인력을 영입하고 해당 기업과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으며, 아마존 역시 어댑트의 연구 인력과 기술을 확보하는 유사한 접근을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거래는 형식적 소유권 이전 없이도 인력과 기술의 결합을 통해 경쟁력의 실질적 이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기업결합과 구별되며, 인재 확보를 목적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acqui-hiring)과 유사한 측면을 가진다. 다만 단순한 인력 영입을 넘어 기술과 조직 역량까지 함께 이전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특히 핵심 연구팀이 통째로 이동해 기존 기업의 독립적 연구개발 역량이 약화되는 경우 잠재적 경쟁자의 성장 경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경쟁정책적 함의를 갖는다. 이러한 구조는 지분 취득 없이도 핵심 기술과 인력에 대한 실질적 영향력을 확보함으로써 통제권의 이전이 계약적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규제의 시간… AI 경쟁질서 다시 짜야
이러한 거래구조 확산에 대응해 주요 경쟁당국의 규제 논의도 변화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 및 연방거래위원회의 2023년 기업결합 가이드라인(Merger Guidelines·2023)은 잠재적 경쟁의 제거, 데이터 집중, 플랫폼 생태계 효과 등 다양한 비전통적 경쟁제한 요소를 포함해 거래의 경쟁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DMA)을 통해 게이트키퍼 플랫폼에 대한 사전적 규제를 도입함으로써 기업결합 심사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시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경쟁정책이 전통적인 지분 취득 중심의 기업결합 심사를 넘어 인력 이동, 기술 라이선스, 계약적 협력 등 다양한 거래가 초래할 수 있는 실질적 경쟁제한 효과를 포착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예외가 아니며,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결합 심사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면서, 2020년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을 계기로 디지털 시장의 특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심사기준을 발전시켜 왔다. 이후 최근까지 데이터 축적에 따른 진입장벽 강화, 네트워크 효과에 따른 시장지배력 확대 가능성, 혁신 경쟁에 대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접근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규제 정교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AI 스타트업 생태계가 충분히 성숙하기 전에 해외 빅테크가 지분 인수 없이 핵심 인력과 기술을 선별적으로 흡수하는 구조가 반복될 경우 외형상 독립 기업이 유지되더라도 잠재적 경쟁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거래는 잠재적 경쟁자를 초기 단계에서 흡수함으로써 장기적인 시장 진입 가능성과 혁신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
문제는 규제의 균형이다. 지분 중심의 기존 기준에 머무를 경우 새로운 형태의 시장지배력 형성을 적시에 포착하지 못할 위험이 있는 반면, 통제 개념을 과도하게 확장하면 정상적인 인재 이동과 기술협력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결국 정책의 과제는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경쟁을 보호하는 균형을 확보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적 규제와 사후적 대응 간의 긴장을 고려하되, 거래의 형식이 아니라 기술과 인력에 대한 실질적 통제의 이전 여부를 기준으로 보다 정교한 분석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는 제도 환경 속에서 피라미드식 지배구조를 구축했고, 승계와 세 부담을 고려한 합병이 반복되며 독특한 기업지배 구조가 형성됐다. 특히 재벌 기업들은 순환출자, 계열사 간 지분 연결, 합병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유지해 왔으며 이는 법적 지분율을 넘어서는 통제 구조가 제도적으로 형성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소유와 통제를 구분해 온 제도적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는 여전히 지분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한편 AI 시대에는 인력, 기술, 데이터와 같은 비유형 자산에 대한 통제권이 점차 중요한 경쟁요소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통제의 대상과 방식 역시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지분 중심의 기존의 틀을 넘어 실질적 통제권을 중심으로 기업결합과 경쟁정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AI 시대에서 국가 간 기술 경쟁력과 시장 구조를 좌우하는 핵심 정책 과제이다.
■ 신호종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롱비치(CSULB) 경영대학 재무학과 종신교수이다. 미시간주립대에서 재무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기업지배구조, 가족기업, ESG 등 기업재무를 연구한다. 한미재무학회(KAFA)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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