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인문사회과학 투자 늘리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11 18:15

수정 2026.05.11 18:36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이재명 정부는 인공지능(AI) 대전환에 대응해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겠다며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2026년 정부 R&D 예산안은 35조3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9.3%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이고, AI 분야 투자도 2조3000억원으로 106.1% 급증했다. 정부 R&D 예산의 약 25%가 대학에 지원되므로, 올해 대학에 대한 R&D 지원은 9조원 규모에 달해 윤석열 정부가 예산을 삭감했던 2024년 6조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 내년에는 지방 거점국립대 지원과 AX중점대학 지원이 본격화되므로 지원예산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공계 연구생활장려금도 참여대학이 43개교로 확대돼 석사 월 80만원, 박사 월 110만원의 생활비를 보장한다.



문제는 이렇게 커진 지원의 무게중심이 여전히 이공계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인문사회분야 학과의 R&D 지원은 교육부 학술연구지원사업 예산 4489억원에 불과하다. 인문사회분야의 대학원생 연구장려금 지원도 연간 석사 200명, 박사 400명 정도만 새로 지원을 받는다. 반면 이공계는 장학금, 연구생활장려금, BK21 기반 성장경로 지원, 박사후연구원 지원까지 촘촘한 사다리를 갖췄다. 박사과정 병역특례 또한 이공계 대학원과 연구기관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이런 편중은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다. 1960~1970년대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고급 기술인력 양성은 가장 시급한 국가 과제가 됐다. 재정이 넉넉지 않았던 정부가 한정된 자원을 이공계에 우선 배분한 데에는 분명한 시대적 이유가 있었다. KAIST가 1971년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연구중심 이공계 특수대학원으로 출범하며 학생 교육비 지원과 병역특례의 상징이 된 것도 그 시대 선택의 압축판이었다.

정책은 시대의 산물이면서도 때로는 시대가 바뀌어도 너무 오래 살아남는다. KAIST가 개원 10년째이던 1980년 산업공학과 안에 경영과학 전공을 신설하고, 이후 학과로 독립하는 과정에서도 문과인 경영학을 국가가 지원한다는 학내외 비판이 심했다. 기술과 산업의 현장에서는 이미 경영·조직·의사결정·인간 이해가 중요해지고 있었지만, 제도와 인식은 여전히 '과학기술 대 비과학기술'이라는 낡은 구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기업의 이공계 인재 선호와 맞물려 '문송합니다'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청년들의 입에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말이 오르내린 것은 인재 양성과 활용이 지나치게 이공계에 편중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AI 시대 산업 경쟁력은 코딩과 엔지니어링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기술과 인간, 데이터와 제도, 알고리즘과 윤리의 창조적 결합을 요구한다.
세계적 AI 기업 팔란티어의 최고경영자(CEO) 알렉스 카프가 철학과 사회학 전공자란 사실도 상징적이다. AI 윤리, 노동 전환, 저작권, 돌봄, 문화콘텐츠, 사용자 경험 같은 탈산업 사회의 핵심 의제는 모두 인문사회과학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인문사회과학 R&D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늘려서 인문사회과학 캠퍼스도 활기를 되찾게 되길 바란다.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