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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다시 유럽으로" 벼랑 끝 스타머, 브렉시트 뒤집기 승부수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12 10:07

수정 2026.05.12 12:43

지방선거 참패 이후 거세진 퇴진 압박
친EU 노선을 전면화, 정면 돌파 선언
브렉시트 10주년, '유럽회귀' 최대 쟁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뉴시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지방선거 참패 이후 거세진 사퇴 압박에도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특히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소원해졌던 유럽연합(EU)과 관계 복원을 정치적 승부수로 꺼내 들면서 영국 정치권이 요동치는 분위기다.

스타머는 11일(현지시간) 런던 기자회견에서 "영국민이 정치에 실망했고 일부는 내게 실망한 것도 안다"면서도 "나는 그냥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타머는 당내 대표 경선이 열리더라도 사임하지 않고 직접 맞서 싸우겠다고 공언했다. 최근 노동당 내에서는 지방선거 참패 책임론과 함께 스타머 총리 교체론이 빠르게 확산하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40~50명이 스타머의 사임 또는 퇴진 일정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타머 내각 첫 부총리이자 차기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앤절라 레이너 의원도 전날 "지금 변화가 필요하다"고 공개 압박에 나섰다.

정치적 궁지에 몰린 스타머가 꺼내든 카드는 역설적으로 유럽 재접근이었다. 그는 이날 브리티시 스틸 국유화 추진과 함께 EU와 관계 강화 계획을 핵심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스타머는 6월 EU 정상회의에서 광범위한 영국·EU 합의를 끌어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노동당 정부는 영국을 다시 유럽 중심에 놓겠다"며 "경제와 무역, 국방과 안보 측면에서 더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브렉시트 10주년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유럽 정치권에서도 적잖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BBC에 따르면 브뤼셀의 한 EU 관계자는 "영국 총리가 정치 생존을 위해 EU와 가까워지겠다는 카드를 꺼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EU 내부 분위기는 냉소적이다. 안보 분야에서는 영국을 여전히 핵심 동맹으로 평가하면서도 경제 분야에서는 스타머 정부의 유럽 복귀 전략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시각이 많다.

실제 영국 정부가 현재 EU와 협의 중인 분야는 식품·음료 안전 협정(SPS), 탄소배출권 연계, 청년 이동 프로그램 등 제한적이다. 브렉시트 이후 생긴 무역 장벽을 일부 완화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다.

특히 스타머가 청년 이동 프로그램을 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원래 독일 등 EU 측이 강하게 요구했던 사안으로 영국 정부는 초기에는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브뤼셀에서는 스타머가 "더 큰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단편적 협력만 제시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EU 측이 진짜 원하는 것은 관세동맹 또는 단일시장 복귀 수준의 관계 재설정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당이 그동안 레드라인으로 설정했던 사안들이다.

브렉시트 당시 영국 사회를 뒤흔든 핵심 쟁점은 이민 문제였다. EU 단일시장에 복귀하려면 사실상 노동력 자유 이동을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는 현재 영국 정치 지형에서 여전히 폭발력이 큰 사안이다.

스타머는 이날 EU 단일시장이나 관세동맹 재가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직접 답변하지 않았다. 대신 "무역과 경제, 국방과 안보 모든 측면에서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고만 언급했다. 이를 두고 영국 정치권과 EU에서는 스타머 총리가 기존 'EU 레드라인'을 사실상 흔들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브뤼셀 내부에서는 영국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EU는 영국과 협력 확대의 대가로 EU 규정 수용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영국이 EU 규정에 더 가까워질수록 미국 등 비EU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폭은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브렉시트 당시 보수당은 미국과 대규모 무역협정을 핵심 기대 효과로 내세웠지만, 지난해 노동당 정부가 체결한 미영 협정은 제한적 수준에 그쳤다.

금융시장은 이미 스타머 리더십 불안에 흔들리는 분위기다.
이날 영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5.68%로 전장 대비 0.1%p 상승했고, 파운드화도 약세를 보였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