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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대통령' 된 워시…트럼프·인플레·파월 삼중압박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14 10:32

수정 2026.05.14 10:32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케빈 워시가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자리에 올랐다. 임기 4년의 연준 의장은 미국 중앙은행 수장으로서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두 가지 책무를 바탕으로 기준금리를 조절한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과 경기·고용을 떠받쳐야 하는 상황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만큼, 연준 의장은 세계 금융시장과 글로벌 경제 흐름을 좌우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취임부터 도전적인 상황에 몰렸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재점화된 인플레이션, 소비자 심리를 짓누르는 유가 충격,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여기에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연준 이사직에 남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제롬 파월 전 의장까지 겹치면서 케빈 워시 앞에 놓인 과제는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무거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플레이션·트럼프 압박 속 출발


케빈 워시 의장은 몇 개월간 이어진 연준 의장 오디션 끝에 선발됐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연준 의장 후보군을 집중 검증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고심한 끝에 워시 의장을 낙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전 의장 시절부터 금리 인하를 지속적이고 공개적으로 요구해왔으며, 신임 의장 선임 과정에서도 금리 인하 성향을 핵심 기준으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CNBC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워시가 상원의 인준을 받은 뒤 취임하자마자 금리를 즉시 인하하지 않으면 실망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기와 증시, 주택시장 부양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 인하 압박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2월 말 시작된 이란과의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미국 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3.8% 상승했다. 이번 상승률은 202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조지프 브루수엘라스 RSM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이 다시 높아지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올해 후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13일 발표된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6.0% 상승했다. 이는 2022년 12월(6.3%)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현재 미국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51달러로 2022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마이클 보르도 럿거스대 교수는 "그는 금리 인하를 원하는 대통령과 유가 충격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높아진 경제 상황 사이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파월 변수와 연준 내부 균열


워시가 연준 이사들과 지역 연은 총재들을 설득해 통화정책 방향을 일관되게 이끄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데 7명의 연준 이사와 지역 연은 총재 5명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의장은 위원회의 수장이지만 과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정책 방향을 관철하기 어렵다.

특히 지난달 금리 결정 회의에서는 4명의 연준 위원들이 정책 성명에 반대 의견을 냈다. 이는 1990년대 초 이후 가장 많은 반대 의견이다. 이들 중 3명은 다수 의견보다 더 나아가 연준이 여전히 금리 인하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신호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주 오하이오 CEO 서밋에서 "기업들을 만나면 인플레이션 우려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개인들과 대화해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실상 조기 금리 인하가 쉽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제롬 파월 전 연준 의장의 연준 잔류 여부도 워시에게는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파월 전 의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그림자 의장 같은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지난 8년간 연준 의장으로 재직하며 연준 이사들과 구축한 신뢰와 영향력을 고려하면, 연준의 독립성이 흔들리거나 정치적 압박이 커질 경우 워시 의장과 트럼프 진영을 견제하는 역할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차대조표 축소·소통 개혁


워시는 취임 전부터 연준 개혁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핵심은 비대해진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와 정책 소통 방식 변화다. 워시는 최근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더 작고 단순한 중앙은행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약 6조7000억달러 규모인 연준 자산을 장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과거 양적완화(QE)를 통해 연준이 지나치게 시장 개입을 확대했다고 비판해왔다. 특히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대규모 매입이 사실상 재정정책 역할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연준 대차대조표가 급격히 커진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연준이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까지 낮춘 뒤 국채와 MBS를 대규모로 매입하며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소통 방식 개혁도 주요 과제다. 워시는 연준의 점도표(dot plot)와 포워드 가이던스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시장에 지나치게 많은 힌트를 주면서 정책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에서는 워시 체제에서 연준이 '덜 예고하고 더 행동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 후보자가 21일(현지 시간)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가 개최한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 후보자가 21일(현지 시간)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가 개최한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