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사 분기점 된 ‘파리의 심판’ 50년
1976년 파리서 열린 블라인드 시음회
美, 저가 오명 벗고 레드와인 1위 등극
스택스 립 양조철학 담은 3종 와인
카베르네 아르테미스·SLV·Cask 23
박물관 소장품부터 만점 전설작까지
오는 24일은 세계 와인사의 한 분기점이 정확히 50년이 되는 날이다. 1976년 이날 프랑스 파리의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작은 블라인드 시음회가 열렸다.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영국인 와인상 스티븐 스퍼리어와 그의 동료 패트리샤 갤러거가 마련한 자리였다. 9명의 프랑스 와인 전문가가 라벨을 가린 채 보르도 1등급들과 캘리포니아 카베르네 소비뇽을 비교 시음했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레드는 무통 로칠드도, 오브리옹도, 몽로즈도 아닌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1973 스택스 립 와인셀라 S.L.V. 카베르네 소비뇽'이었다.
이 시음을 사건으로 만든 것은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Modern Living'섹션에 실린 네 단락짜리 기사였다.
당시 기사의 파급력은 한 와이너리와 한 산지의 운명을 동시에 바꿔놓았다. 1976년 이전까지 캘리포니아 와인은 저가 대량 생산 와인의 이미지에 갇혀 있었고, 나파 밸리는 세계 와인 지도에서 사실상 무명이었다. 파리의 심판 이후 나파 밸리는 단번에 세계 정상급 카베르네 산지로 인식됐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나파 밸리 전체 포도밭 면적의 약 절반을 차지하며 t당 최고가를 형성하는 흐름의 시작점이 바로 그 한 잔이었다.
■'파리의 심판' 반세기 완성하다
현재 우리가 아는 '나파 밸리'는 1976년 5월24일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승한 그 병은 현재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국립미국역사박물관에 영구 소장돼 있다. 이런 맥락에서 스택스립 와인 셀라의 카베르네 라인업은 나파 밸리 카베르네를 진지하게 이해하려는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은 잔에 담아봐야 할 좌표로 꼽힌다.
1976년 우승이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진 양조 철학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택스 립 와인셀라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크게 세 갈래로 정리된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 아르테미스, 스택스 립 와인 셀라 SLV, 스택스 립 와인 셀라 Cask 23이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가 2001년 처음 출시한 아르테미스는 와이너리 카베르네 라인업 중 가장 폭넓은 시야를 가진 와인이다. 이름의 유래는 그리스 신화 속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다. 와이너리가 자체 포도밭(에스테이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나파 밸리 전역을 돌며 가장 뛰어난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를 사냥해 한 잔에 모은다는 의미를 담았다.
단일 포도밭의 개성을 또렷이 보여주는 SLV·Cask 23과 달리 아르테미스는 나파 밸리 곳곳의 베스트 포도를 블렌딩해 '나파 밸리 카베르네의 종합'을 한 잔에 정리한다는 콘셉트로 설계됐다.
2022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98%에 카베르네 프랑 1.5%, 쁘띠 베르도 0.5%를 더한 블렌드를 프렌치 오크에서 15개월 숙성했다. 검은 과실의 응집감과 미네랄, 매끈한 타닌이 균형 있는 구조로 정리된다. 라인업 입문점이자, 그릴드 비프·양고기·숙성 치즈 등과 페어링이 잘 어울리는 데일리 프리미엄 카베르네다.
■스택스립 와인셀라의 3가지 자부심
스택스립 와인셀라 SLV의 SLV는 약자가 아니라 '스택스 립 빈야드(Stag's Leap Vineyard)'라는 단일 포도밭 자체의 이름이다. 1970년 창립자 워렌 위니아스키가 처음 심은 포도밭이며, 와이너리의 출발점이자 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여기서 수확한 1973년 카베르네 소비뇽이 3년 뒤 파리의 심판 우승작이 됐고, 그 한 병이 1996년 스미소니언 국립미국역사박물관에 영구 소장되면서 SLV라는 이름은 미국 와인 역사의 한 좌표로 굳어졌다.
1976년의 그 한 잔이 50년 흐른 지금도 같은 SLV라는 이름으로 매년 출하된다는 점에서 와인 애호가에게는 '나파 카베르네의 원형'을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통로다. 2021 빈티지는 100% 카베르네 소비뇽을 100% 새 프렌치 오크에서 21개월 숙성했다. 검은 카시스, 모카, 무화과, 에스프레소의 풍부한 아로마와 다크 초콜릿·블랙베리의 긴 피니시가 특징이다. 출하 후 15~20년 이상의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 Cask 23은 스택스 립 와인 셀라 라인업의 정점이자 컬렉터블 카베르네이다. 1974년 수확기, 컨설팅 와인메이커였던 안드레 첼리스체프가 SLV의 한 로트를 시음하다 '별도 병입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데서 시작됐다. 숙성되던 23번 통의 번호가 그대로 와인 이름이 됐다.
'예외적인 빈티지에만 출시한다'는 원칙 아래 작황에 따라 생산 여부를 결정해 왔다. 2021 빈티지는 100% 카베르네 소비뇽(SLV·FAY 블렌드)을 100% 새 프렌치 오크에서 21개월 숙성했다. 생산량이 제한적이며 주요 평론지로부터 100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꾸준히 받아오는 컬렉터블 와인이다. 2021 빈티지는 100점을 받은 바 있다.
아영FBC 관계자는 "파리의 심판 우승 50주년을 맞아 스택스립 와인셀라의 카베르네는 입문부터 최상위까지 3가지 라인으로 정리돼 있다"며 "나파 밸리 카베르네의 한 시대를 잔으로 정리하고 싶은 와인 애호가라면 50주년이라는 이 타이밍에 한 번쯤 마주할 만한 라인업"이라고 말했다.
ssuccu@fnnews.com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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