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호 서울성모병원 교수 "치료 패러다임 전환"
표적치료제, 초기치료 단계로 앞당겨 생존율 끌어올려
‘잔존 암세포 추적’ MRD 기반 치료가 ALL 판도 바꿔
치료제 ‘블리나투모맙’ 공고요법, 재발률 20%로 낮춰
국내 대표 혈액암 치료기관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에서 ALL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혈액내과 윤재호 교수는 21일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성인 ALL은 사실상 사망선고에 가까운 질환이었지만, 이제는 표적치료제와 정밀 모니터링 기술 발전으로 완치 가능성을 논의하는 단계까지 진입했다"고 말했다.
■ "백혈병은 진단 순간 이미 전신질환"
ALL은 림프구계 백혈구로 성장해야 할 미성숙 세포가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정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채 무한 증식하는 혈액암이다.
윤 교수는 "고형암은 국소 병변을 수술로 제거할 수 있지만 백혈병은 발병과 동시에 암세포가 혈액을 타고 전신으로 퍼진다"며 "치료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진단 순간부터 전신성 4기 암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ALL 치료의 핵심은 전신 항암치료다. 과거 수십 년 동안은 강력한 화학항암요법으로 완전관해를 유도한 뒤, 마지막 단계에서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는 방식이 표준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치료 환경은 급변했다. 표적항암제와 면역치료제가 속속 등장하면서 환자의 유전자 특성과 재발 위험도에 따라 치료 전략이 세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ALL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꼽히는 것은 미세잔존질환(MRD)이다. 이는 일반 현미경 검사나 영상검사에서는 암세포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초정밀 분자검사를 통해 확인되는 극소량의 잔존 암세포를 의미한다.
윤 교수는 "암세포가 단 한 개라도 남아 있으면 결국 재발로 이어질 수 있다"며 "ALL은 MRD 검사 기술이 가장 정교하게 표준화된 질환군으로, MRD 측정 없이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이제 정확한 치료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MRD 양성 여부가 치료 전략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항암치료 후 현미경상 백혈병 세포가 5% 미만이면 모두 같은 '완전관해' 상태로 간주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완전관해 환자라도 MRD가 남아 있으면 재발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추가 표적치료나 강도 높은 치료 전략이 즉각 적용된다. 반대로 MRD 음성 환자는 예후가 상대적으로 좋아 조혈모세포이식을 생략하는 접근도 가능해졌다.
■ 블리나투모맙의 등장, 초기 치료 핵심으로
ALL 치료 패러다임 변화를 이끈 대표 약물은 이중항체 치료제 '블리나투모맙'이다. 이 약물은 환자 면역세포(T세포)와 백혈병 세포(B세포)를 동시에 연결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기전이다. 초기에는 재발·불응성 ALL 환자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기존 화학항암요법 대비 생존율을 크게 끌어올리며 치료 판도를 바꿨다.
대표 연구인 'BLAST 연구'에서는 MRD 양성 상태의 ALL 환자에게 블리나투모맙을 투여한 결과 약 80~90%가 MRD 음성 전환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MRD가 이미 음성인 환자에게도 공고요법 단계에서 블리나투모맙을 추가 투여하는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세계 혈액학계를 뒤흔든 'E1910 연구'에서는 MRD 음성 환자에게 블리나투모맙 공고요법을 추가한 결과 3년 생존율이 85%에 달했고, 50세 미만 환자에서는 95%에 육박하는 성적이 보고됐다.
블리나투모맙 공고요법이 확산되면서 조혈모세포이식 필요성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기존 치료만 시행한 환자군은 시간이 지나면 약 절반이 재발했지만, 블리나투모맙 공고요법을 추가한 환자군에서는 재발률이 20% 수준까지 감소했다. 윤 교수는 "재발률을 한 번에 20~30% 낮춘다는 것은 단순 개선이 아니라 치료 축 자체를 바꾸는 수준의 변화"라며 "현재 전 세계 혈액암 전문가들이 이식 회피 전략을 적극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고령 환자들에게는 의미가 더욱 크다. 조혈모세포이식은 치명적 감염이나 이식편대숙주병(GVHD) 같은 심각한 합병증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혁신 치료제가 실제 환자들에게 폭넓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급여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블리나투모맙은 1주기 치료 비용이 수천만원에 달하는 고가 약제다. 일부 재발 환자군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지만, 초기 공고요법 영역에서는 급여 확대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 교수는 "지금 약을 쓰면 재발을 막고 이식 없이 완치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가 비용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비용을 투입해 재발을 막는 것이, 나중에 재발 환자에게 CAR-T나 고위험 이식 치료를 반복하는 것보다 국가 재정 측면에서도 훨씬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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