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퇴자들의 희망
일본 고령사회백서의 결론
한국 고령 소비자의 바램
[파이낸셜뉴스] 고령화는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이미 현실의 최전선에 닥친 당면 과제입니다. 인공지능 부상, 국제 정치 격변 못지않게 급속한 인구 구조 변화 또한 우리 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에 거대한 변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요즘 중장년이 만나면 주식 말고도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실버타운입니다. 고령 부모님의 오늘과 중장년 자녀 세대 본인의 내일을 위해 다들 한두 번씩은 현장을 찾곤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는 찾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래 살아 익숙한 내 집, 정든 동네에서 노후의 삶을 주체적으로 지속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쉘위파트너스㈜ 김종훈 대표가 고령 부모와 중장년 자녀에게 'Aging in Place', 즉 '살던 집, 익숙한 동네에서 행복한 노후 보내기' 실전 가이드를 매주 연재합니다. 100년 기업 IBM의 미국 본사 경영전략실과 한국 지사 소프트웨어 총괄전무를 역임한 김 대표는 '고령친화 주거환경 개선' 현장에서 소셜 임팩트를 실현해가고 있습니다.
AARP The Magazine은 미국 은퇴자협회(AARP) 회원에게 발간되는 최대 규모 소비재 잡지로, 시니어 세대의 건강, 재테크, 여행, 라이프스타일 정보를 다루는 최고 권위의 매체이다.
2021년에 AARP 회원 대상으로 '집과 커뮤니티' 선호도에 관한 설문 조사가 있었다. 은퇴자 10명 중 8명은 '살던 집과 익숙한 동네에서 계속해서 노후 보내기'를 희망했다. 이것을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라 일컫는다. Age, 나이에 ing, 현재 진행형을 더하니 나이 듦을 말하고, in Place는 제자리 즉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동네를 뜻한다.
일본은 2006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어느덧 20년 차이다. 2024년에 진입한 한국보다 18년 선배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이제 10%를 갓 넘어섰는데, 일본은 벌써 30%에 육박하고 있으니, 선배도 아주 대선배다.
일본 내각부는 1997년부터 매년 고령사회백서(高齢社会白書)를 발간해오고 있다. 자국의 고령화 현상을 30년간 면밀히 관찰해온 일본 정부의 문제 정의와 정책 대안 제시 역량이 상당하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일관되게 축적해온 데이터가 그 깊은 통찰력의 든든한 기반이리라.
일본 내각부(内閣府)가 매년 발간하는 고령사회백서 2022년판 표지. 내각부는 총리 직속의 컨트롤타워로서, 한국 대통령실의 정책 기획 기능과 국무조정실의 정책 조정 기능이 결합된 거대 정부 조직이다.
2022년판 고령사회백서 결론부에 이렇게 나온다. 시·공간적으로 근접하여 친밀한 지역사회에서 안전한 주거 장소와 사회적 역할을 확보하고, 친구 및 동네 주민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라고. 역시 에이징 인 플레이스에 관한 조언이다.
그런데 방문해본 실버타운에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이는 정작 찾기 어렵다. 삼시 세끼 차려주고, 럭셔리한 부대시설과 고급 컨시어지 서비스가 빵빵한 데도 말이다. 단순히 비용만의 문제는 아니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매 3년마다 '노인실태조사'를 한다. 가장 최근의 2023년 보고서를 살펴보자. 고령자의 87.2%가 건강을 유지하면서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2020년 83.8%보다 그 수치가 더 증가했다. 90세 이상은 무려 93.4%가 현재의 집에서 계속 살기를 원했다. 10명 중 9명이 익숙한 주거환경에서 생활을 지속하려는 강한 의향을 보인다.
고령 친화적인 주거환경,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 건강과 경제력 등 여건만 뒷받침된다면, 한국 고령자도 에이징 인 플레이스를 원한다. 고령 국민이자 고령 소비자가 선호한다는 말이다.
여행 다녀오면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 있다. 집 떠나면 개고생. 노후 삶에서도 우리 집이 최고인 건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돈과 건강이 노후 준비의 다가 아닐 테다. 정부, 기업, 고령자와 중장년 모두 에이징 인 플레이스도 미리 준비해가야 한다. 김종훈 쉘위파트너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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