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변호사 대신 AI가 소송장 쓰는데… 1년째 기준 못 만든 정부

최은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25 19:08

수정 2026.05.25 21:30

변호사법에서 규정한 법률사무
어디까지 허용하는지 불명확해
이용자들은 가짜 판례에 무방비
리걸테크는 성장 골든타임 놓쳐
"생성형AI 시대 맞춰 재정립을"

일반인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직접 소장을 작성해 송사에 대응하는 시대가 열렸지만, 이를 규율할 정부의 법적 기준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해외 빅테크와 국내 리걸테크(법률 서비스를 디지털 기술로 지능화해 제공하는 산업)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법률 AI 시장에 뛰어들며 서비스가 일상화되고 있는 반면,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은 더디기만 한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이용자들은 가짜 법률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은 성장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등 정부 당국은 최근 제도개선위원회를 꾸려 AI 법률서비스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도입 시기나 규율 범위는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해외 범용 AI와 국내 리걸AI를 모두 고려해 해외 사례와 학계 의견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쟁점이 다양해 현 단계에서 구체적인 방향을 밝히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5월 '변호사 검색서비스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후 1년째 AI 법률서비스에 대한 별도 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따라서 현재는 변호사법 해석과 법원 판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아닌 자의 법률상담과 법률문서 작성 등 '법률사무' 취급을 제한하고 있다. 법원은 최근 판결에서 이용자가 빈칸을 채워 넣는 방식의 표준화된 법률문서 자동 작성 서비스는 허용 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생성형 AI가 이용자 상황을 분석해 구체적 법률문서를 작성하거나 변호사 연결·알선까지 하는 경우에는 위법 소지가 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존 법 해석만으로는 챗GPT 등 범용 AI를 활용하는 일반 이용자와 해외 빅테크 기반 법률 AI 서비스를 어디까지 허용·규율할 것인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변호사들이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고객 정보나 영업비밀을 어디까지 입력·활용할 수 있는지, 또 일반 이용자들의 '환각(AI가 사실과 전혀 다른 답변을 진실인 듯 답하는 현상)' 피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

홍대식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은 "최근에는 일반인이 생성형 AI로 소장을 작성해 승소한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며 "(제재 대상인)'변호사가 아닌 자'에 대한 법 적용에 있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가이드라인은 변호사 검색서비스에만 한정돼 있어 AI 기반 법률서비스나 B2C(기업과 개별 이용자간 서비스) 리걸AI는 여전히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변호사법상 '법률사무'의 개념을 AI 시대에 맞춰 다시 정립하고, 서비스 유형별 허용·금지 기준과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더딘 속도와 달리, 시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신생 리걸테크 업체 멘타트는 지난 21일 변호사용 AI 서면 작성 서비스를 정식 출시했다. 기존 시장에서는 로앤컴퍼니의 '슈퍼로이어'와 엘박스 등이 변호사 업무 보조 중심의 법률 AI 서비스를 먼저 운영했다. 여기에 글로벌 AI 기업 앤트로픽이 법률 특화 서비스 '클로드 포 리걸' 출시를 공식화하면서 해외 AI와의 경쟁도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법조계는 사용 자체를 차단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최소한의 기준과 책임 범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낸다.
또 규제가 국내 업체에만 집중될 경우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리걸AI는 글로벌 모델들이 너무나 강력해서 이미 일반인들이 법률상담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환각 문제가 심해서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