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동 안한 국산칩 숨기고 일본산으로 시연
평가단은 "목표 달성" 판단해 80점 부여
法 "허위 보고로 평가 업무 방해"
[파이낸셜뉴스] "국산 기술로 개발했습니다."
해외 의존도를 낮추겠다며 추진된 국가 연구개발 과제의 최종 평가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달랐다. 실제 개발한 반도체 칩이 정상 작동하지 않자 일본산 칩을 이용해 성과를 꾸민 뒤 정부 평가단을 속였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A씨(56)는 B주식회사의 대표였다.
과제명은 '스마트 가전용 지능형 객체인식 24GHz 레이더 통합반도체(SoC) 개발'로 스마트가전에 쓰일 레이더 반도체와 센서 모듈, 구동 소프트웨어를 국산화하는 프로젝트였다.
문제는 최종 평가를 앞두고 발생했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은 연구개발과제평가단이 수행 과정과 성과의 질을 기준으로 최종 평가하며 등급은 '우수·보통·미흡·극히 불량'으로 나뉜다. 극히 불량 등급을 받을 경우 참여 제한이나 제재부담금 부과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평가를 앞둔 2022년 12월께 A씨는 B사가 개발한 SoC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킬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최종 평가에서 극히 불량 등급을 받아 제재 대상이 될 것을 우려했던 A씨는 허위 최종평가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평가위원들 앞에서 발표·시연하는 방식으로 평가 업무를 방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2023년 2월, A씨는 일본 소시오넥스트사의 칩을 사용해 도출한 연구개발 결과를 B사가 자체 개발한 성과처럼 최종평가보고서에 담아 정보통신기획평가원에 제출했다.
허위 보고는 서류 단계에서 끝나지 않았다. A씨는 같은 해 3월 대전 소재 정보통신기획평가원에서 열린 최종 평가 발표회에 참석한 평가위원 6명 앞에서 허위로 작성한 최종평가보고서를 발표하고 시연했다. 당시 연구개발 성과가 허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평가위원들은 최종목표 기술 등 정량 항목에 대해 '목표 대비 달성함'이라는 의견을 냈고, 과제에는 '보통' 등급에 해당하는 80점이 부여됐다.
법원은 이를 단순한 성과 부풀리기가 아닌 범죄로 봤다. 형법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는 허위 사실 또는 위력으로 상대방의 정상적인 업무 판단을 방해했을 때 성립한다.
결국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12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허위의 최종평가보고서를 작성하고 연구개발과제평가단의 평가위원들 앞에서 발표 및 시연하는 방법으로 평가위원들의 평가 업무를 방해했다"며 "범행 경위와 내용 등에 비춰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 이 사건으로 A씨와 회사에 합계 약 8억4700만원의 제재금이 부과된 점, 이를 분할 납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성실히 납부하겠다고 다짐한 점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 A씨가 과거 이종 범죄로 벌금형을 한차례 받은 것 외에는 다른 처벌 전력이 없는 점도 참작했다.
이번 사건에는 임금과 퇴직급여 관련 혐의도 함께 병합돼 있었다. 검찰은 A씨가 충남 천안에서 전자부품 조립·제조업체를 운영하며 퇴직 근로자들에게 임금과 퇴직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않았다고 봤다. 공소사실에는 퇴직 근로자 18명의 임금 등 합계 1억4711만9280원을 퇴직일로부터 14일 안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퇴직 근로자 17명의 퇴직급여 적립금 등 7302만3601원을 퇴직연금사업자로 하여금 지급하게 하지 않았고, 퇴직급여 부족액 2억9133만5692원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었다.
다만 이 부분은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위반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사건은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범죄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공소제기 이후 A씨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사실이 인정되면서 법원은 해당 부분 공소를 기각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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