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하인리히 법칙의 교훈

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31 19:12

수정 2026.05.31 19:12

서지윤 사회부
서지윤 사회부

졸지에 다가오는 재앙은 없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란 게 있다. 지난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7만여건을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법칙을 발표했다. 하나의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작은 재난이 29번, 가벼운 징후가 300건 발생한다는 것이다. 참사의 징후에 주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말이다.

하인리히 법칙을 그저 공허한 통계 이론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100년 가까이 거론된 안전관리 금언이 2026년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얼마 전 6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도로 붕괴사고를 떠올려 볼 때 그렇다. 안전진단에서 D등급(미흡) 판정을 받았으나 철거는 수년이나 미뤄졌다. 다리 상판 콘크리트에서 2.9㎝의 침하가 발견돼 무너질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고 한다. 철거작업 전부터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졌다는 상인 증언도 잇따른다. 사고를 막을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징후에 제때 주목하지 못한 결과는 한없이 참혹하다. 이번 사고로 시공사 현장관리소장과 감리단장, 외부 전문가가 숨졌다. 붕괴 징후가 나타났음에도 안전진단 작업에 나섰던 이들은 추락 방지용 보호구조차 착용하지 않은 채 구조물에 진입했다. 차도가 무너지기 5분 전엔 승객 42명이 타고 있던 KTX 열차가 차도 밑을 통과했다. 붕괴 직전 도로 밑을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긴급하게 핸들을 돌리는 사고 영상도 공개됐다. 더 큰 인명피해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 우려되는 지점은 이러한 '후진국형 인재(人災)'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데 있다. 모두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미적거리는 사이에 인재가 '판박이'처럼 반복된다. 과거를 돌아볼 때 수도 없이 그랬다. 지난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도 바닥과 기둥에 균열이 생기는 등 사고 전조증상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도 선사가 징후들에 대해 특별히 대처하지 않고 넘어가 304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 3월 14명이 목숨을 잃고 59명이 부상을 당한 '안전공업' 공장 대형화재도 마찬가지다. 사고 이전부터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참사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사회 전반적으로 그동안 놓친 사고 징후가 없는지 되돌아보며 그 징후를 더 안전한 사회로 가는 디딤돌이 되게 해야 한다.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추모의 길일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의 교훈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jyseo@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