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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고베항, 부두를 도시로 돌려준 30년의 실험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6.01 12:00

수정 2026.06.01 13:11

도시화를 진행중인 고베항의 전경. 고베시 제공
도시화를 진행중인 고베항의 전경. 고베시 제공

【고베(일본)=이유범 기자】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차량으로 1시간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베 시. 오사카만을 끼고 롯코산을 등진 이 항구도시는 1868년 개항 이래 일본 근대화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항만이 마비된 뒤 30년, 지금 고베항은 전혀 다른 얼굴로 변해 있었다. 크레인과 컨테이너가 가득했던 부두 자리에 카페와 야경 명소, 수족관이 들어섰다. 한국의 부산 북항과 인천 내항도 같은 갈림길에 서 있다. 고베항에서 그 답을 찾아봤다.



지진 30년, 항구가 도시로 돌아왔다

지난달 29일 방문한 고베시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고베 워터프론트의 핵심인 메리켄파크였다. 다소 늦은 오후 시간임에도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붐비고 있었다. 특히 'BE KOBE'라고 쓰인 대형 조형물 앞에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서고 있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이 자리는 하역 크레인과 컨테이너 야적장이 점령하고 있었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진도 7.3의 지진이 고베를 덮쳤다. 항만 시설의 절반이 무너졌고 화물은 요코하마와 도쿄항으로 빠져나갔다. 단순 복구만으로는 경쟁력을 회복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고베시와 항만 당국은 '물류 효율화와 도시 공간 환원'을 동시에 추구하는 재개발 전략을 세웠다.

메리켄파크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의 지라이온 빌딩 10층을 찾았다. 고베 항만당국 관계자의 설명과 함께 고베항 전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고베시는 지난 2024년 12월 신코 돌제 서구역에 일본 최초의 슈퍼요트 전용 마리나 사업자를 선정했다. 사업 기간은 30년이다. 단기 임대가 아닌, 수십 년 단위로 민간 사업자와 협력하는 구조다. 고베시가 2025년 4월 발표한 '워터프론트 그랜드 디자인'에는 하버랜드와 메리켄파크를 잇는 해상 데크, 녹지 확충, 야간 관광 콘텐츠 창출 계획이 담겼다. 목표 연도는 2040년이다.

세키구치 나오키 고베시 항만국 계장은 "워터프론트 재개발의 핵심은 항만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시민이 바다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며 "정권이나 예산 상황이 바뀌어도 기본 방향은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고베항 재개발은 2012년 본격 착수 이후 13년째 방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완공 목표를 2040년으로 잡았으니 총 사업 기간은 30년에 가깝다. 정권 교체와 경기 변동에도 사업 기조가 흔들리지 않은 것이 고베 모델의 핵심이라는 평가다.

부산·인천이 고베에서 읽어야 할 것

고베에서 돌아오는 길, 자연스럽게 부산 북항이 떠올랐다. 부산 북항 재개발은 구조적으로 고베 모델과 닮았다. 컨테이너 기능을 신항으로 이전하고, 기존 부지 약 150만㎡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지난 2008년 본격 시작돼 현재 1단계(2008~2027)와 2단계(2020~2030)가 병행 추진 중이다. 2023년 친수공원과 경관수로가 시민에게 개방됐고 2024년에는 마리나 시설이 준공됐다. 고베처럼 항구가 시민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다만 고베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북항 재개발은 지금까지 사업계획 변경만 12회, 사업구역 변경이 8회에 달했다. 설계가 바뀌고 사업 주체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완공 시점도 반복적으로 미뤄졌다. 인천 내항 1·8부두 재개발 역시 항만 기능과 도시 개발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다.

고베항의 경험이 한국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기술이나 자금의 문제가 아니다. '항구는 도시의 얼굴'이라는 인식의 전환이다. 물류 효율만 높이면 된다는 발상으로는 도시와 공존하는 항구를 만들 수 없다. 반대로 개발 수익에만 집중하면 항만 본연의 경쟁력을 잃는다.

고베 워터프론트는 지금도 공사 중이다.
2040년 완성을 목표로 해상 데크가 설계되고 마리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항구를 도시의 뒷마당에서 앞마당으로 되돌리는 일은, 고베가 증명하듯 수십 년짜리 프로젝트다.
부산과 인천이 같은 답을 쓰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