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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포퓰리즘 선거전과 중우정치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6.01 18:25

수정 2026.06.01 18:25

TV토론 기피 유튜브 쇼츠 기승
선거전, 인기영합 무대로 퇴행
포퓰리즘에 올인 ‘4류 정치’가
풀뿌리 민주주의 망칠까 걱정
중우정치 늪에서 헤어나려면
유권자의 분별력이 최후 보루

구본영 논설고문
구본영 논설고문
인터넷이 일군 디지털 생태계가 유토피아는 아니다. 1989년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안한 팀 버너스리의 지적이다. 그는 '팀 버너스리, 이것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란 책에서 "현재 디지털 세계는 우리의 '의도'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헤드라인이나 재미있는 밈처럼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실제로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에서 자극적 제목과 선정적 섬네일이 판친 지 오래다.

6·3 지방선거 본투표날이 박두했다.

선거전 초반 거대여당의 압승이 점쳐지던 판세였다. 이후 경합지역이 늘어나는 여론의 추이도 감지됐다. 다만 민심을 뒤흔든 건 정책 경쟁이 아니었다. 후보자들이 방송 토론을 기피하고 유튜브 홍보전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인기몰이를 하느라 진실 규명은 뒷전으로 밀려난 꼴이었다. 버너스리가 경계했던 '디지털 디스토피아'의 한 단면도처럼.

부자 몸조심이라고 해야 할까. 선거전 초반 지지율이 앞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토론에 부정적이었다. 이로 인해 부산을 제외한 주요 격전지에서 TV토론회는 1회 토론이 전부였다. 공직선거법 규정을 가까스로 지킨 셈이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 TV토론회는 많게는 5차례 열렸지만, 이번엔 단 한 번이었다. 그것도 내심 낮은 시청률을 바라는 양 심야시간대인 28일 밤 11시부터 2시간 동안 열렸다.

그 대신 장외 공방과 유튜브 쇼츠(3분 이내 짧은 동영상) 홍보전은 불을 뿜었다. 특히 민주당 정원오 후보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간 서울시장 선거전이 그랬다. GTX-A 삼성역 구간 '철근 누락' 공방이 단적인 사례다. 이재명 대통령이 엄호사격하듯 안전점검을 지시하는 등 여권과 정 후보 측은 서울시의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오 후보 측은 지난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철근 누락과 관련한 51개 내용을 국토교통부 산하 국가철도공단에 전달했다고 반박했다. 애초 외곽에서 서로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공개토론으로 유권자들의 판단을 구하는 게 정도였다.

물론 후보 입장에선 방송 토론보다 유튜브 홍보가 가성비가 높다. 올드미디어인 방송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슨 돌발 변수가 생길지 모를 TV토론을 준비하느라 최소한 하루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면 말이다. 더욱이 주취폭력 전력과 칸쿤 출장 등을 둘러싼 의혹으로 '긁힌' 정 후보 입장에선 TV·라디오 토론은 잘해야 본전이라고 보는 게 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식 토론이 줄어들면 네거티브 장외 공방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인기영합에 '올인'하는 선거전도 부산물이었다. 현금을 나눠 주는 공약은 난무했지만, 누구도 똑 부러진 재원조달 방안을 말하진 않았다. 유권자 간 이해가 엇갈리는 현안은 거론조차 않으려 했다. 예컨대 지역별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 통폐합 이슈처럼.

포퓰리즘 선거전의 해독은 분명하다. 유권자의 알 권리를 가로막아 개개인을 바보로 만든다는 점이다. 일찍이 플라톤이 "민주정은 대중의 선호가 도덕이 되는 중우정치로 변질할 우려가 농후하다"고 했던 그대로다. 문제는 중우정치의 피해자는 결국 포퓰리즘에 휘둘린 군중일 것이란 사실이다. 거리에 나붙은 '선거 전 현금폭탄, 선거 후 세금폭탄'이란 플래카드가 이를 함축하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이런 선거전 와중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종의 주가가 고공비행 중이다. 이들 글로벌 일류 기업의 위상을 보면서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발언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1995년 베이징특파원단 간담회에서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라고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었다. 예나 지금이나 대기업인들 왜 문제가 없으랴. 그럼에도 중우정치를 부추기는 저질 선거전을 보면 그의 지적이 새삼 와닿는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인기영합성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스위스를 참고할 만하다. 스위스 국민들은 지난해 초부유층에 고율 상속세를 부과하는 '슈퍼리치 과세안', 몇 해 전 '매달 300만원씩 기본소득 제공안'을 각각 압도적 다수로 부결시켰다. 지속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국부 해외이탈 등 부작용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중우정치의 늪에서 헤어나려면 국민의 분별력이 필수다. 우리 유권자들도 3일 현명하게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국민은 선거일에만 주권자 대우를 받을 뿐 선거 후엔 다시 정부의 노예가 된다"(장자크 루소)는 경구를 되새길 때다.

kby777@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