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물·그늘·휴식 절실한 실외 노동자들]
기자가 직접 쓴 인형탈, 6월에도 내부 온도는 폭염 수준
걷다보면 숨 턱밑까지 차올라…그나마 시민 응원이 '힘'
더위는 일터를 가리지 않습니다. 공사장과 논밭뿐 아니라 시장 골목, 번화가, 배달 동선에도 땀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형탈을 쓰고 거리 홍보 노동을 체험하며 무더위 속 실외 노동자의 시간을 따라가 봤습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아이고, 더운데 고생이 많아요."
6일 낮 서울 강북구 수유시장 일대에서 노란색 닭 인형탈을 쓴 기자에게 한 시민이 말을 건넸다. 겉으로는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단순한 홍보처럼 보였지만, 탈 안에서는 착용 10분도 지나지 않아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인형 탈 내부 온도 체감…사실상 폭염 수준
식당 홍보용 이동형 간판을 등에 메고 시장 인근 번화가 일대를 걷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시야가 좁아졌다. 정면은 보였지만 좌우 사각지대가 컸다. 골목에서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다가올 때마다 고개를 크게 돌려야 했다. 등에 멘 간판은 몸을 뒤로 잡아당겼고, 보도 폭이 좁은 구간에서는 행인과 벽에 닿지 않도록 몸을 비틀어야 했다.
체험 시간대 서울 기온은 27도 안팎이었다. 오후에는 30도 가까이 오를 것으로 예보된 날이었다. 공식 폭염특보가 내려진 상황은 아니었지만, 전신을 덮은 인형탈 안은 달랐다. 바깥 바람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안쪽 천은 금세 습기로 찼다.
인형 신발도 불편했다. 원래는 신발 위에 덧신처럼 착용하는 구조였지만, 이날은 인형 신발만 신고 움직였다. 바닥이 얇아 보도블록의 굴곡과 작은 돌이 그대로 느껴졌다. 발밑을 오래 살피면 앞쪽 차량과 보행자를 놓치기 쉬웠고, 정면을 보면 바닥 상태가 불안했다. 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인형탈에 쏠린 시민 관심…응대할수록 차오른 더위
"조심해요, 뒤에 오토바이 와요."
지나가던 남성이 손짓하며 알려줬다. 뒤를 돌아보자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탈 안에서는 주변 소리도 한 박자 늦게 들어왔다. 더위만 견디는 일이 아니었다. 좁아진 시야와 둔해진 감각, 등에 멘 간판까지 함께 신경 써야 했다.
시민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거 안에 엄청 덥죠?"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탈 안에서 "괜찮아요"라고 답했지만 목소리는 먹먹하게 울렸다. 밖으로 제대로 들렸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하자 그는 "물 많이 마셔요"라고 위로했다.
초등학생 몇 명은 먼저 다가왔다. "하이파이브 해주세요." 아이들이 손을 내밀자 기자도 손을 맞댔다. 이어 자세를 낮춰 사진을 찍고 다시 일어나자 숨이 가빠졌다. 땀은 턱 아래로 흘렀다.
"보기만 해도 더운데요. 오늘 같은 날 이걸 어떻게 입어요." 휴대전화를 들고 지나가던 40대로 보이는 남성은 인형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인사를 받고, 손을 흔들고, 사진 요청에 응하는 동안에도 탈 안쪽 열기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길목에 서 있다가 사람이 몰리면 옆으로 비켜섰고, 차량이 들어오면 몸을 안쪽으로 붙였다. 거리 홍보 노동은 한곳에 서 있는 일이 아니라 주변 흐름에 맞춰 계속 움직이는 일이었다.
잠시 쉬기 위해 건물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 햇볕이 사라지자 공기가 달라졌다. 인형탈을 벗자 얼굴과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있었다. 몇 분 뒤 몸의 열은 조금 가라앉았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다시 탈을 쓰고 거리로 나가야 했다.
온열질환 실외 작업장에서 많아
무더위 속 실외 노동의 위험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5년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 결과'에 따르면 2025년 5월15일부터 9월25일까지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4460명이었다. 전년 3704명보다 20.4% 늘었다.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29명이었다.
발생 장소는 실외가 많았다. 전체 온열질환자의 79.2%인 3534명이 실외에서 발생했다. 장소별로는 실외 작업장이 1431명으로 가장 많았고, 논·밭 542명, 길가 522명 순이었다. 직업별로는 단순노무종사자가 1160명으로 가장 많았다.
온열질환은 열로 인해 생기는 급성질환이다. 뜨거운 환경에 오래 있으면 두통, 어지러움, 근육경련, 피로감, 의식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방치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짧은 체험에서도 답답함과 피로감은 빠르게 왔다. 하루 종일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이런 상태가 반복될 수 있다.
기준 있지만 현장은 흩어져 있어
고용노동부는 폭염 상황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 작업장소에서 일하는 경우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부여해야 한다. 체감온도 35도 이상이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무더위 시간대에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옥외작업 중지가 권고된다.
사업주는 노동자가 체감온도 31도 이상 작업장소에서 2시간 이상 일할 경우 폭염 노출을 줄이는 조치를 해야 한다. 냉방·통풍장치 설치·가동, 작업시간대 조정, 주기적 휴식 부여 중 하나 이상의 조치가 여기에 해당한다. 온열질환 의심 증상이 있으면 지체 없이 119에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이렇게 기준은 마련돼 있지만 실외 노동의 모습은 한 가지가 아니다. 건설 현장처럼 작업자가 모여 있는 곳도 있지만, 거리 홍보, 배달, 주차 안내, 행사 보조처럼 계속 이동하는 일도 있다. 물을 마시는 시간, 그늘로 빠지는 장소와 시간, 잠시 멈추는 방식은 현장마다 다양하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장 골목 인근에서 체험한 거리 홍보 노동도 그런 실외 노동의 한 형태였다. 정해진 작업대 앞에 서 있는 일이 아니라, 시민 동선과 차량 흐름에 맞춰 계속 자리를 옮겨야 했다. 사람이 몰리면 옆으로 빠졌고, 오토바이가 들어오면 벽 쪽으로 붙었다. 물을 마시거나 탈을 벗는 일도 골목 흐름이 잠시 느려진 뒤에야 가능했다.
모두 밖에서 이뤄지는 노동이지만 근무 형태는 제각각이다. 폭염 기준은 체감온도와 휴식 시간을 중심으로 마련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누가 어떤 공간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적용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폭염 대책이 닿아야 할 현장은 공사장은 물론, 이런 거리 위 노동까지 넓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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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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