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훔치고, 도망가고, 모른 척…'바늘도둑' 경보령 [사건실화]

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6.08 07:00

수정 2026.06.08 07:00

열린 가방 틈에 손 넣어 지갑 훔쳐
10만원 넘게 결제…분실신고 들어와
마트서 소액 절도 범행 잇따르기도
계산 마친 것처럼 빠져나가려다 '적발'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AI 이미지. 구글 제미나이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AI 이미지. 구글 제미나이
[파이낸셜뉴스] #. 지난해 8월 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농수산물시장. 푹푹 찌는 더위 속에 시장은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평범한 노인처럼 인파 속을 서성이던 A씨(70)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장보기에 정신이 팔려있던 B씨의 열려 있는 가방이었다. B씨가 한눈을 판 바로 그 순간. A씨의 노련한 손이 가방 속으로 '슥-' 향했다. 눈 깜짝할 새 B씨의 지갑은 A씨의 품으로 순간 이동했다.


A씨는 단순한 좀도둑이 아니었다. 이미 절도죄로 세 차례나 징역형을 선고받은 '베테랑 절도범'이었다. 게다가 그는 교도소 문을 나선 지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죄를 지으면 가중 처벌을 받는 '누범기간' 중이었다.

지갑 속 내용물은 꽤 알찼다. 현금 12만6000원과 카드 2장, B씨가 남편 명의로 발급받아 둔 '민생회복 소비쿠폰 선불카드' 1장이 들어있었다.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쥐여준 카드가 '바늘도둑'의 손에 들어가게 된 황당한 순간이었다.

A씨의 뻔뻔한 행보는 지갑을 훔친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곧장 서울 강북구 일대를 돌며 훔친 카드로 '긁는 재미'에 푹 빠졌다. 첫 목적지는 약국이었다. 훔친 민생회복 소비쿠폰 선불카드를 건네 시가 4500원 상당 반질크림 1개를 구매했다. 발길을 옮겨 오후 6시경엔 마트에서 3만6000원 상당 식료품도 샀다. 그로부터 3시간 뒤에는 한 포장마차에서 6만원 상당 음식과 술을 사 먹었다. 단 하루 만에 총 3차례에 걸쳐 10만500원을 남의 돈으로 결제했다.

하지만 뒤늦게 B씨가 지갑이 사라진 것을 알고 카드를 분실신고하면서 A씨의 범행은 막을 내렸다. 4일 뒤인 지난해 8월 6일 오전 11시30분께 A씨는 강북구에 있는 또 다른 약국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3만원 상당 활성비타민 영양제를 사려고 했으나 '승인이 거절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메시지가 떴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1단독(정덕수 부장판사)은 지난달 12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절도)와 사기, 사기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동종전력이 다수 있고 누범인 점을 불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면서도 "잘못을 인정하는 점, 피해자들에 대해 형사공탁한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렇듯 훔친 카드를 사용하거나 식료품, 생활용품을 훔쳐 달아나는 소액 절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3단독(김보라 판사)은 지난 3월 25일 특수절도와 특수절도미수 혐의로 기소된 C(69)·D씨(73) 부부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20일부터 같은 해 5월 30일까지 총 3회에 걸쳐 29만9334원 상당 물품을 계산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작년 6월 6일 같은 마트에서 15만4946원 상당 물품을 계산하지 않고 계산대를 통과해 나가려다 직원에게 발각돼 미수에 그친 혐의도 있다.

이들이 훔쳤거나 훔치려고 시도한 물품은 소불고기, 전복, 닭가슴살을 비롯해 연양갱, 찹쌀 등 식료품이 다수를 이룬 것으로 조사됐다. 미리 챙겨온 장바구니에 식료품을 담은 뒤 마트용 카트 위에는 물건 몇 개만 올려두었다.
계산대에선 카트 위 물건만 결제하고 숨겨둔 장바구니에 있는 물품은 계산하지 않고 나가는 '눈속임'을 시도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