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 공산 정권을 향한 경제적 압박 수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그동안 쿠바 경제를 지탱해 온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랜 미국의 경제 제재 속에서도 관광과 광업 분야에서 버팀목 역할을 하던 외국인 투자마저 끊기면서, 쿠바 경제가 통제 불능의 붕괴 상태로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쿠바 중앙은행은 오는 13일부터 미국 외 다른 국가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터카드와 비자 신용카드 사용이 전면 중단된다고 발표했다. 마스터카드 측은 "결제 네트워크를 연결하던 해외 파트너사가 쿠바 내 영업을 축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인의 카드 사용이 이미 금지된 상황에서, 외국인 관광객의 발마저 묶이게 된 셈이다.
외국 호텔 체인들도 손을 떼고 있다.
스페인의 호텔 체인 이베로스타와 멜리아는 각각 10여 개가 넘는 쿠바 내 호텔 경영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으며 캐나다의 로열턴 호텔 앤 리조트 역시 관광업 급감의 타격을 이기지 못하고 이미 영업을 중단했다. 최근에는 고질적인 항공유 부족으로 주요 국제 항공사들이 쿠바 행 노선을 잇따라 취소하기도 했다.
가장 치명적인 타격은 쿠바 최대의 외국인 투자 기업인 캐나다 광산기업 '셰리트 인터내셔널'의 철수다. 셰리트는 지난 30여년간 쿠바 동부 모아 광산에서 매년 수만 t의 니켈과 코발트를 채굴하며 쿠바의 핵심 수출 산업을 이끌어왔다. 전 최고경영자(CEO)가 과거 피델 카스트로의 '가장 아끼는 자본가'로 불릴 만큼 쿠바 정권과 밀착해 있던 기업이다.
그러나 셰리트는 최근 쿠바 내 영업을 전면 중단하고 현지 직원들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연료 부족과 허리케인 멜리사 피해에 이어, 미국의 강력한 제재 압박이 결정타가 됐다. 셰리트 측은 지분 과반을 미국 공화당계 금융가 레이 워시번과 연계된 사모펀드 '질론 캐피탈'에 매각하는 예비 합의를 체결한 상태며, 이 과정에서 주가는 50% 이상 폭락했다.
미국 워싱턴 아메리칸 대학교의 쿠바 경제학자 리카르도 토레스는 "지금은 완전히 변곡점"이라며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쿠바 경제에 가해진 치명적인 일격"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쿠바 군부가 지배하는 거대 국영 기업연합체 '가에사(GAESA)'를 겨냥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쿠바 도둑정치 공산 시스템의 심장"이라고 부른 가에사는 쿠바 전체 경제의 최소 40%를 장악하고 있으며, 외국 기업들이 운영하는 호텔의 상당수도 이 가에사와 합작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외국 기업들에 쿠바 군부와 거래를 계속하고 미국의 제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를 맞을 것인지, 아니면 쿠바를 떠날 것인지 양자택일을 강요한 것이다. 쿠바 연구그룹의 리카르도 에레로 이사는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 군부와 정보기관, 그리고 이들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들을 레이저처럼 정밀 조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압박해 쿠바행 석유 공급줄을 차단한 이후 쿠바 내부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쿠바 전역은 극심한 연료 부족으로 대중교통이 마비됐고, 농민들은 수확한 농산물을 시장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매일 수 시간씩 이어지는 정전을 견뎌야 하는 처지다. 암시장 등 사설 금융 시장에서 쿠바 페소화 가치는 달러당 620페소까지 폭락했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냄비를 두드리며 거리로 나와 쓰레기를 불태우는 등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수십만 명의 난민이 섬을 탈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외화 공급원이던 외국 기업들마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쿠바 경제는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입게 됐다.
바루크 대학의 쿠바 전문가 테드 헨켄은 현 상황을 "원투 펀치를 맞은 격"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의 목을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졸라매고 있다"고 말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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