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특허는 숫자 아닌 전략이다

박신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6.08 19:07

수정 2026.06.08 19:07

박신영 산업부 부장
박신영 산업부 부장
한때 특허 경쟁은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여겨졌다. 기업과 국가는 더 많은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곧 기술력의 상징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글로벌 산업 경쟁의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특허의 숫자가 아니라 그 특허가 실제로 어떤 시장을 만들고, 어떤 가치를 창출하느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단순한 반도체 제조 기업이 아니라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 배경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라는 하드웨어 혁신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소프트웨어 생태계, 아키텍처 설계, 그리고 전략적으로 축적된 지식재산 포트폴리오가 있다. 중요한 점은 엔비디아의 경쟁력이 특허의 '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AI 컴퓨팅이라는 미래 기술 궤적을 정확히 읽고 그 핵심 영역에 집중한 '질 높은 특허전략'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기술 경쟁은 단순한 발명 경쟁이 아니다. 미래 산업의 표준을 누가 먼저 정의하고, 그 표준을 어떤 지식재산으로 보호하느냐의 싸움이다. 이 과정에서 무의미하게 많은 특허를 보유하는 것은 오히려 전략적 자산이 되기 어렵다. 시장과 연결되지 못한 특허는 비용일 뿐이며, 실제 산업 경쟁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지식재산 전문가인 수잔 해리슨은 특허를 단순한 법적 권리가 아니라 '전략적 투자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허의 본질적 질문이 '이 기술이 특허가 가능한가'가 아니라 '이 특허가 어떤 가치를 창출하느냐'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특허의 질은 단순한 기술 완성도가 아니라 미래 시장과의 연결성, 경쟁 우위, 그리고 산업 통제력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와 같은 첨단 산업에서는 질 높은 특허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고, 모방과 추격이 쉬운 환경에서는 개별 특허의 수량이 아니라 핵심 기술을 얼마나 정확히 선점했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즉 하나의 전략적 특허는 수십개의 비핵심 특허보다 더 큰 시장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특허를 보험처럼 취급하던 시기도 있었다. 가능한 한 많은 특허를 확보해 두면 분쟁에 대비할 수 있고,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시장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한다. 유지비용이 증가하고, 실질적 방어력과 수익창출 효과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특허전략은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갖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식재산 정책은 특허 출원건수를 늘리는 양적 경쟁에서 벗어나 국가 산업 전략과 연결된 핵심 기술을 얼마나 정교하게 확보하느냐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특허 데이터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미래 산업구조를 예측하는 중요한 신호이며,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는지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지식재산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 있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이 만들었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위해 만들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특허는 더 이상 기술의 결과물이 아니라 미래 시장을 설계하는 전략적 도구가 되고 있다.

다가오는 제16회 국제지식재산보호컨퍼런스는 이러한 흐름을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다. '지식재산 시대! 아이디어는 자산으로, 보호는 혁신으로'라는 주제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지식재산을 양 중심이 아닌 질 중심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담고 있다.
특히 AI와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지금, 질 높은 지식재산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다. 지식재산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양이 아니라 질, 그리고 그 질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적 통찰이 국가와 기업의 미래를 가를 것이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산업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