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노 아라타 일본 아시아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인터뷰
EU식 통합 대신 '경제안보 협력 모델' 제시
정치·외교 갈등 때마다 경제협력 중단되는 구조 문제
해법은 '정례 협의·공급망 대응·CPTPP 연계' 3축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한일이 지금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유럽연합(EU)식 경제공동체가 아니라 경제안보 공동체다. 정권 변화나 외교 갈등에도 경제협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접근이 중요하다."
구노 아라타 일본 아시아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사진)는 11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EU형 경제통합 모델에 대해 "관세동맹, 공동통화, 공동농업정책 등 고차원 통합을 추진할 정치적 기반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한일 협력의 목표는 통합 모델 자체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당면한 공급망 단절과 기술 리스크, 에너지 불안, 인공지능(AI) 규범 공백 등 구조적 위험에 대응하는 체계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노 교수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일 협력을 '단순한 협력 확대'가 아닌 '위기 대응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로 규정했다. 현재 한일 관계의 핵심 문제에 대해서도 역사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정치·외교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경제협력이 자동으로 중단되는 구조라며 정치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제도적 방파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일 경제협력의 장기 비전은 EU식 경제공동체인가.
▲EU형 경제공동체는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렵다. 관세동맹이나 공동통화, 공동농업정책 등은 단순한 경제 협력이 아니라 정치 통합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일 간에는 그러한 수준의 정치적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한일이 직면한 과제가 이미 통합 모델이 아니라 경제안보형 협력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망 단절, 에너지 수급 불안정, 기술 유출, AI 규범 미정립 등은 개별 국가 단위로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목표는 EU형 통합이 아니라 위기 대응 능력을 공유하는 경제안보 협력 체계의 제도화다.
―그렇다면 협력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출발점은 제도 설계가 아니라 문제 대응 경험의 축적이다. 예를 들어 핵심 소재 부족이나 공급망 차질, 에너지 위기 같은 상황은 이미 현실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보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협력은 선언이 아니라 작동 경험이 축적될 때만 지속된다. 이 단계가 지나야 비로소 협력 범위 확대와 신뢰 형성이 동시에 가능해진다.
―한일 협력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가.
▲핵심은 역사 문제가 아니라 정치·외교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경제협력이 동시에 중단되는 구조적 취약성이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어떤 협력도 장기적으로 안정되기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갈등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갈등이 발생했을 때 협력이 자동으로 멈추는 시스템 자체다.
―그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해법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경제안보·산업 협력을 중심으로 한 정례 정책 협의 채널의 제도화다. 핵심은 정치 상황과 분리된 실무 레벨의 지속적 대화 구조다. 갈등이 있어도 최소한의 협력 회로가 유지돼야 한다. 다음으로 위기 상황에서 즉시 작동하는 공급망 대응 메커니즘이다. 정보 공유, 긴급 협의, 대체 조달 지원 등이 포함된다. 실제 위기 상황에서 작동한 경험이 신뢰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한일 협력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같은 다자 규범 체계에 연결하는 것이다. 양자 관계에만 의존할 경우 정치 변수에 취약하지만 다자 규범 속에 편입되면 협력은 구조적으로 안정화된다. 이 세 요소가 결합될 때 비로소 경제협력은 정치 변수로부터 일정 부분 독립성을 확보하게 된다.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협력 분야는 무엇인가.
▲우선순위는 경제안보 리스크의 현실성에 따라 정해진다. 첫째,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다. 조달 다변화, 공동 비축, 대체 소재 개발이 포함된다. 둘째, 에너지 협력이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소, 암모니아 등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공동 대응이 가능하다. 셋째,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 제조업 협력이다. 양국 산업 구조의 상호보완성이 가장 높은 영역이다. 넷째, 조선 산업의 고부가가치 전환이다. 친환경·자율운항·AI 기반 기술 경쟁으로 이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AI 규범 형성이다. 이 분야는 단순한 양자 협력이 아니라 글로벌 규범 경쟁과 직결된다.
―한일 협력의 궁극적 의미는 무엇인가.
▲특정 국가와의 경쟁 구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핵심은 세계 제조 공급망 전체의 안정성과 회복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은 선언이나 합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협력의 축적을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된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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