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메노포즈’ 연출자로 변신한 베테랑 배우 전수경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7.19 16:25

수정 2014.11.05 09:36



얼굴이 이유없이 화끈거린다. 가슴이 두근대고 식은 땀이 흐른다. 갱년기 증후군이다.

축 처진 뱃살에 꼬불 꼬불한 파마머리. 근사한 옷으로 멋이라도 내고 싶지만 가계부 사정은 뻔하다. 아이들 성적은 날로 떨어져 고민이고 남편은 만날 피곤하다며 투정 부린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제3의 성(性)으로 취급받는 서러운 이름 ‘아줌마’. 바로 그 아줌마들의 수다가 시작된다.


폐경기 여성들의 고민을 코믹하게 그려낸 뮤지컬 ‘메노포즈’가 오는 19일 백암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아줌마가 미치는 공연’이라는 광고 문구 처럼 ‘메노포즈’는 중년 여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온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좀더 특별하다. 1997년 초연 때부터 극중 ‘전문직 여성’으로 활동해온 뮤지컬 배우 전수경이 직접 연출했기 때문이다. 잘 나가던 축구 선수가 감독으로 데뷔한 격이다. ‘메노포즈’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연출가’ 전수경을 만나보았다.

■대사 하나에도 꼬장꼬장한 ‘전잘난’

“어? 그 대사 좀 이상한걸?”

전수경의 ‘참견’이 또 시작됐다. 그가 등장하는 작품 연습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자기 것만 연습해도 바쁠텐데 동료들의 연기와 대사까지 신경쓴다.

그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라이선스 뮤지컬이 주류였던 1990년대 당시 영어로 된 대본을 구해 입맛에 맞게 가사를 고치기도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꼭 한소리 하고마는 성격 탓에 ‘전잘난’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이 별명을 좋아한다고 했다.

“욕심이 많은 편이에요. 완벽주의이기도 하구요. 사실 ‘전잘난’이란 별명은 저와 매우 친한 사람들이 지어준 거에요. 그만큼 작품에 애착이 있으니까 꼬치 꼬치 따지는 거 아닐까요. 전 그런 평가를 받는게 좋아요.”

그의 이런 성격은 제작사 대표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제작한 서울 뮤지컬 김용현 대표는 수년 전부터 “전수경씨는 연출을 해보라”고 권했다. 당시에는 그냥 하는 소리려니 했지만 연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데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한번은 몸이 안좋아서 오디션을 망쳤어요. 그동안 쌓아온 명성이 있으니 쉽게 잊혀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냉정하더라구요. 그 때 마치 제 자신이 닳아버린 배터리처럼 느껴졌어요. 누가 저를 찾겠어요. 새 배터리가 넘쳐나는데.”

뮤지컬 ‘쓰릴미’ 제작사인 뮤지컬 해븐에서 메노포즈 연출 제의가 들어왔을 때 그는 흔쾌히 응했다. 마흔이 넘어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게 두려웠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연출가로 변신할 줄 진작에 알았어!”

■“나이 드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나요.”

마흔을 갓 넘은 두 아이의 엄마. 큰 목소리에 털털한 행동.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할 정도로 호리호리한 몸매를 뺀다면 배우 전수경은 영락없는 보통 아줌마다.

그는 1991년에 데뷔해 ‘브로드웨이42번가’, ‘ 아가씨와 건달들’, ‘시카고’ 등 유명 라이선스 작품에서 차곡 차곡 실력을 쌓아왔다. 특히 뮤지컬 ‘맘마미아’의 타냐 역은 누구라도 전수경을 떠올릴 정도로 그의 대표작이 됐다.

한때는 언론과 주변의 평가에 굉장히 민감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어린 나이였던데다 위치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그땐 모든 게 불안했어요. 내가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십대 후반에 앓던 몸살은 5년쯤 지나자 씻은 듯이 나았다.
그가 기억하는 전성기는 바로 그때다. 부족함 없이 돈을 벌 수 있었고 사람들도 그를 ‘뮤지컬 스타’로 기억했다.


“삼십대 중반이 되자 놀랄만큼 모든 게 안정됐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도 느긋하게 대처할 수 있는 뻔뻔함이 생겼죠. 이제 마흔이에요. 이해심도 많아지고 자신감도 더 많아지는 나이에요.”

얼마전 뮤지컬 ‘싱글즈’를 보며 손바닥이 부서져라 공감의 박수를 쳤던 기자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전수경은 말한다.

“스물 여덟이라구요? 사랑,결혼,직장…. 모든 게 두렵고 걱정되죠? 나도 그랬어요. 얼른 나이 먹어봐요. 한결 편해질 거에요. 나이 드는 것, 알고 보면 행복한 일이에요.”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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