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대기업들 위기 극복 ‘투트랙 경영’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0.03 17:25

수정 2011.10.03 17:25

"세계 경제 침체가 당분간 이대로 갈 것 같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지난달 27일 미국 출장길에서)

"글로벌 경제가 앞날을 예측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해지고 있다."(정준양 포스코 회장, 지난달 28일 터키에서)

예사롭지 않은 세계 경제 대불황 조짐에 대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도미노와 같은 유럽·미국 재정위기와 환율불안 등이 전 세계 실물경제 침체로 확산돼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실물경제 위기로 확산 조짐

3일 재계에 따르면 세계 경제의 이중침체(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 가능성이 커지자 대기업들이 사실상 위기경영에 준하는 대응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대형 인수합병(M&A)을 자제하고, 금융시장 악화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고, 환율·원자재가격 등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동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 시장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대기업들의 심리적인 동요가 크다. 지난해와 올 상반기 사상 최대 실적 덕에 심적으로 '느슨해진' 대기업들이 하반기 들어 주가 급락과 글로벌 위기 재현에 상대적으로 충격이 크다는 얘기다. 악재도 많다. △활화산 같은 유럽발 재정위기 △널뛰는 환율 △소비심리 위축 △수출시장 냉각 △내년 본격적인 선거정국 등이다.

문제는 이 같은 악재가 단발성 리스크가 아닌, 소비심리 위축의 저성장 기조로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그 파장과 후유증이 더욱 혹독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것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실제 올 4·4분기부터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휴대폰, 자동차, 조선 등 6대 주력 수출전선에 비상등이 켜질 것으로 보고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우리나라 내년 경제성장률을 정부 기대치보다 무려 1%포인트 낮춘 3.6%로 전망, 저성장 위기를 경고했다. 또 대한상의, 코트라, 무역협회는 물론 한국은행이 조사한 4·4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 역시 줄줄이 기대치보다 크게 밑돌면서 심각한 수출경기 침체, 실물경제 위축을 예고했다.

■경영은 '긴축', 투자는 'GO'

대기업들도 긴박해졌다. 복합적인 여러 변수가 겹친 데다 예측이 어려운 탓에 과거와 달리 대응전략을 새 판에서 다시 짜야 할 판이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내년 경영계획을 짜는 게 예년보다 적어도 한 달 가까이 빨라졌다"면서 "그만큼 요구하는 내용도 더 타이트해져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선 경영계획은 '긴축모드', 투자는 '그대로 간다'는 방침. 대형 M&A는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비용절감 등을 통해 지출계획은 최대한 타이트하게 한다는 기본 대응엔 이미 들어갔다.

하지만 미래 현금수익원(캐시카우)이 될 신사업 투자는 변함없이 추진한다는 방침. 아울러 포스코, 한진해운, GS칼텍스 등 대기업들이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등으로 현금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현금확보가 경기불황에 대비한 선제적인 조치인 것은 물론 저가매물의 '인수합병(M&A)용 실탄'이 될 수 있다"며 "경제 위기를 과거 사례처럼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40조원에 이른다.

삼성그룹은 계열사별 경영계획 수립 일정을 지난해보다 앞당겨 잡았다. 저성장 기조에 맞춰 단기적으로 액정표시장치(LCD), 반도체 등 주력제품 수출 감소 대비책, 장기적으론 미래 신성장사업 전략을 재수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LG그룹도 최근 LG디스플레이가 중국 광저우에 1조원을 투자하려던 8세대 LCD 생산공장 착공을 연기하는 등 비상경영 모드에 돌입했다.

포스코는 위기경영을 위한 상황별 시나리오를 다시 짜고 있다. 일단 1조4000억원의 사상 최대 원가절감 달성과 그동안 공격적이던 M&A 투자를 재조정하는 등 '안전모드'로 전환했다. 하지만 인도, 중국 등에 글로벌 철강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투자는 예정대로 집행한다.

SK그룹도 최근 환관리 태스크포스를 가동, 원자재·환율 변동에 맞춘 월별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SK관계자는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와 2차전지 등 10조5000억원 규모의 신사업 투자는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2년 전 '공격경영'에 이은 '질적 성장'을 위한 대응책을 찾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최근 체코 및 슬로바키아 등 유럽 현지 공장을 직접 찾아 공격적인 위기 대응을 강조하면서 자신감을 드러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skjung@fnnews.com정상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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