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안녕들 하십니까?” 물음에 ‘응답’하거나 ‘조소’하거나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2.16 18:09

수정 2014.10.31 10:07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씨(27)가 지난 10일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철도 민영화 및 젊은 세대의 정치 무관심을 비판하는 2장짜리 대자보를 붙인 이후 관련 대자보가 잇따라 붙고 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씨(27)가 지난 10일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철도 민영화 및 젊은 세대의 정치 무관심을 비판하는 2장짜리 대자보를 붙인 이후 관련 대자보가 잇따라 붙고 있다.

사회 정치적 이슈에 무관심한 청년들에게 '안녕(安寧: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을 물은 한 대학생의 질문이 사회 곳곳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안녕하지 못하다"고 응답했다. 스펙 쌓기와 취업 경쟁의 한복판에서 그동안 '안녕'하다고 믿어 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일부 대학생들의 경우 이를 두고 '선동'이라고 비판하거나 대자보를 훼손 하는 등 껄끄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외 대학, 고등학생, 일반 시민까지 응답 확산

지난 10일 고려대 재학생인 주현우씨(27)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통해 처음으로 제기한 이 물음이 국내외 대학은 물론, 고등학생, 일반 시민들에게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cantbeokay)에 따르면 16일 오후 12시 44분을 기준으로 66개의 대학들이 대자보를 통해 이 물음에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참여하는 대학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의 숫자도 22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교통대학교의 한 학생은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유난이 되어버린 세상, 저는 유난떠는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워 눈앞에 일어난 이 모든 일에 침묵 했습니다"라며 "'안녕한 척'하며 눈치만 보고 살아왔던 저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 전국 학우들의 목소리는 문득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상지대학교의 한 학생은 "2012년 1만4160명. 하루 38.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언젠가 저와 함께 놀던 친구가 그러지 않을까 싶어 걱정됩니다."라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의 현실을 꼬집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주 UC버클리 캠퍼스에도 지난 14일 '저도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각 대학의 대자보를 살펴본 결과 응답하는 목소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현실의 팍팍한 경쟁 속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살아오거나, 사회적 문제 제기를 하면 유별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봐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국정원 선거개입, 철도 민영화, 쌍용자동차 해고 등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녕한 줄 알았고, 안녕한 척 살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안녕 못하겠다."는 것이다.

전북 군산여고 학생들의 '응답' 대자보
전북 군산여고 학생들의 '응답' 대자보

이런 움직임은 예비 대학생인 고등학생들에게도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전북 군산여고 학내 게시판에는 이날 '고등학교 선배님들 학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또 경남 진주여고, 성남 성일고등학교와 효성고등학교, 파주 문산여자고등학교 등에도 대자보가 게시됐다. 고등학생들도 대학생들이 제기한 사회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표현했다.

이 밖에도 자신을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대학생들의 이번 행동을 지지한다고 밝히며 "생각해보면 '민주화'에 대한 시작은 언제나 대학생이었습니다"라며 "4.19가 그랬고, 6월 항쟁이 그랬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떤 사람은 이 캠페인에 대해 영웅 심리로 그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군중 심리로 동조하는 분도 있을 것이며 그냥 재미로 시작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라며 "허나, 아무렴 어떻습니까? 여러분께서 내시는 목소리는 분명 의미가 있고 그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자신을 복학생이라고 밝힌 한 20대 청년이 2호선 당산역에 붙인 대자보, 덕수궁 대한문 옆 담벼락에 붙은 대자보 등 16일 오후 현재까지 '안녕들 하십니까'에 대한 응답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반박 대자보 등장, 일부는 대자보 훼손하기도

16일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에 올라온 중앙대학교 대자보 철거 사진.
16일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에 올라온 중앙대학교 대자보 철거 사진.

안녕을 묻는 대자보에 '나는 안녕하다'거나 '안녕을 묻는 대자보 때문에 안녕하지 못하다'는 반응들도 있다. 또 학내에 게시된 대자보를 수거하거나 훼손을 시키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경북대의 한 재학생은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말로 시작하는 대자보를 통해 "철도노조파업을 반대하고, 밀양 송전탑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면 깨어있지 못한 대학생 취급을 받는다"며 "사회문제 충분히 관심 많다. 그런데 그것이 옳지 못한데도 지지하고 응원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이어 "당신들은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라고 항상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다른 게 아니고 틀린 것이다. 저는 이런 현실에 안녕치 못 합니다"라고 적었다.

지난 14일에는 보수청년단체인 자유대학생연합이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의 선동형 대자보에 자신의 실명과 소속을 밝히고 대자보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며 "대자보에 쓰일 글은 자유대학생연합에서 작성해 줄 것이며, 필요한 모든 비용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혀 '대필' 논란을 낳기도 했다.

또 보수 성향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는 14~15일 고려대와 서강대 등에 부착된 대자보를 찢은 인증샷이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들은 대학생들의 정치적 의사 표시에 대해 조소하며 대체로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16일에는 중앙대에 게시된 대자보를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제거해 쓰레기통에 버린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학교의 허가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학생의 동의 없이 대자보를 무단 철거한 학교 측의 조치에 대해 중앙대 학생들은 더 많은 대자보를 붙이는 방식으로 응답했다.

■대자보 문제의 본질은 대한민국 언론?

일부 전문가와 시민들은 최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로 불거진 일련의 문제의 본질이 젊은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 14일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실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승리, 한국저널리즘의 실패'(부제:'낙하산'과 '조중동'이 지배하는 한국언론의 2013 암흑기)라는 글을 통해 이를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신문, 방송, 통신 등 여론형성의 3대 주요매체를 완벽하게 장악한 모양새를 갖춰 박근혜 정부에 토스했다"고 비판하며 "지금의 여론은 온전한 여론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한 대학생의 대자보가 삽시간에 새로운 뉴스가 되는 사회는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병든 사회다"고 밝혔다.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시민은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방송은 북한의 방송과 뭐가 다를게 있습니까?"라며 "언론들부터 바로잡아야 안녕 할 수 있겠습니다.
"라고 적었다.

2호선 지하철 역에 익명으로 대자보를 붙인 한 시민은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적 의사 표현에) 종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표현의 자유'가 망설여지는 사회가 되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의 명언으로 알려진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 놓겠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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