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fn논단] 아우슈비츠와 731부대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24 17:03

수정 2014.10.24 22:38

[fn논단] 아우슈비츠와 731부대

하얼빈은 우리 역사와 관계가 깊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한반도를 집어삼키던 당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곳이 하얼빈 역이다. 또 하얼빈 시내에서 20여㎞ 떨어진 교외에 일본의 악명 높았던 731부대가 있었다. 최근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하얼빈 시를 찾았다. 짬을 내 두 곳을 다 둘러보았고 731부대에서 문득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를 떠올려 봤다. 두 곳 모두 일본과 독일 군국주의의 악행을 기록한 '기억의 장소'지만 매우 달랐다.


2004년 2월 초 폴란드 크라코시에서 1시간 달려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를 방문했다. 영하 15도가 넘는 데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 훨씬 더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곳곳에 새겨진 안내판과 그곳에서 사망한 유대인들의 유품(안경·옷·신발 등)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았고 인간의 잔악함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유독 한 군데에서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이곳을 방문한 많은 독일인이 방명록에 써놓은 참회의 글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런 역사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인종주의를 배격하며 인권을 존중하겠습니다.' 등 많은 독일 사람이 역사를 되새기며 사죄와 반성의 글을 남겼다. 안내인은 폴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방문객들이 오고 특히 독일 중·고생들이 단체로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귀띔해 줬다.

반면에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자행해 최소한 3000여명이 숨진 731부대에선 중국 학생들만 눈에 띄었다. 이곳을 안내한 조선족 여행 가이드는 중국 각지에서 초·중·고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애국 교육을 받는다고 알려 줬다. 그러나 이곳 어디에서도 일본인 관광객이나 일본인들이 남긴 방명록의 글을 찾을 수 없었다. 군 성노예나 731부대를 역사책에서 배우지 않는 일본인들이 이곳을 찾을 리가 없다. 731부대를 아는 일본인들은 극소수일 터이고 이들 가운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눈 씻고 보려 해도 볼 수 없을 듯하다.

지난 3일부터 이틀간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시 주석은 우리에게 일본의 역사왜곡에 공동 대응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은 우리가 역사문제와 안보를 분리해 일본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를 바란다. 국내에서도 이런 정책 지지자들이 꽤 있다. 중국의 부상 견제를 국익이라고 보는 미국의 현실주의 정치인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정책이다. 반면에 일본의 역사왜곡을 좌시할 경우 이는 중국의 공세적 정책을 정당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 우리의 국민정서를 고려해 두 문제의 분리가 적합한 정책이 아니라는 의견도 상당히 많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서 두 정책 가운데 무슨 정책을 취할지는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우리의 안보에 매우 필요하지만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 강화와 좋은 관계 유지도 북한 핵문제를 감안할 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한·미동맹과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 모두 다 필요하고 이를 잘 유지하는 게 우리의 국익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이런 두 국익을 분명하게 저해한다. 이는 단순하게 과거에 집착하는 게 아니다.
인권이라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무시하는 일본을 어떻게 가치 동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이 문제는 점점 더 우리에게 정책적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역사를 망각하면 역사가 되풀이될 뿐이다.
역사문제와 안보를 분리해 다룰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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