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은행

[‘위기의 은행’ 긴급점검] <1> 건설사 부도공포,은행 옥죈다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1.17 17:17

수정 2008.11.17 17:17



외환위기 때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성장을 거듭했던 은행이 10년 만에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원화, 외화유동성 경색은 다소 완화됐지만 실물경제 침체가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다 경기둔화를 막기 위해 대출확대에 나서라는 정치·사회적 요구와 건전성 강화라는 내부 경영방침이 충돌하면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위기에 처한 은행의 진로를 6회에 걸쳐 진단해 본다. <편집자>
국내 은행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다.

자산의 건전성이 당시와 비교해 훨씬 나아졌지만 3개 은행 중 1개가량이 합병 등을 통해 정리된 97∼99년을 떠올릴 정도다.


97년 말 당시 33개였던 은행은 99년 8월 말까지 자산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27.3%에 해당하는 9개 은행이 정리됐다.

이처럼 은행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해외 조달여건 악화 등 대외요인도 있지만 건설·중소기업과 가계관련 대출의 부실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시공능력 41위 건설사인 신성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이 건설사 연쇄부도를 몰고 와 은행 부실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것이란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연체율이 낮은 가계대출도 고용한파가 휘몰아쳐 실직자가 양산되면 원금과 이자부담을 이기지 못한 가계를 중심으로 ‘주택 투매→가격 급락→금융권 동반 부실’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건설·중기 대출 ‘발등의 불’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은행들을 가장 옥죄는 것은 건설사 등 중소기업 대출의 건전성이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하향했던 국제신용평가사 피치 한국사무소의 장혜규 이사는 “(한국의 은행들은) 최근 2∼3년 동안 건설사 등 중소기업 쪽에 많은 대출을 한 데다 특히 신용경색이 발생한 올해까지도 대출을 많이 했다”며 “잠재적인 부실 가능성이 높은 신용사이클의 꼭지에서 대출을 늘린 탓에 지금처럼 경기가 악화되고 신용경색이 심화되면 부실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일반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2005년 1조4000억원이 늘었지만 2006년에는 30조9000억원으로 증가했고 2007년에는 50조6000억원까지 급증했다. 올 상반기에도 24조7000억원이 늘었다. 특히 2007년 50조6000억원가량 늘어난 중기대출 중 건설·부동산 관련 대출은 20조원에 달한다.

한은은 이와 관련,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국내외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대출 부실화율이 대출 증가율에 후행하는 경향이 있어 중기의 신용위험, 즉 중기대출의 건전성이 나빠질 조짐이 있다”고 진단했다.

직접적인 연관성은 적지만 저축은행 등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가 빠르게 진척되고 있는 것도 은행권에는 잠재적 위험요인이다. 금융시스템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탓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현재 저축은행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12조2100억원으로 전체 대출금의 24.0%를 차지한다. 연체금액은 1조7440억원, 연체율도 14.3%로 은행권 연체율의 21배에 달한다. 연체율은 3·4분기(7∼9월)에도 계속 상승세여서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주택대출은 잠재적 ‘폭탄’

중기대출에 비해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이 상대적으로 건전하다는 데는 금융감독당국, 한은, 은행 모두 동의한다. 이는 수치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2006년부터 1% 아래로 떨어져 0.5%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긍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부실화 조짐은 있다. 우선 부동산경기가 호황이었던 2∼3년 전 급증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분할상환 시기가 올해부터 대거 도래한다.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은행에서 올해 분할상환이 개시되는 주택담보대출금액은 총 11조7250억원이며 내년에는 26조9923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어난다.

문제는 주택경기가 좋을 때는 주택을 팔아서 원금을 갚으면 되지만 현재는 정부가 주택관련 규제를 거의 다 해제했는데도 집값은 반등 기미조차 없다.

나아가 ‘고용한파’까지 엄습하고 있다. 올 10월 신규 취업자 증가 폭이 9만7000명으로 3년8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을 정도다. 외환위기 때 보던 실업자 물결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을 정도다.
고용불안이 확대되면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있는 여력이 축소돼 가계 부실, 금융권 부실이라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유신익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경기침체로 금융기관의 연쇄적 부실 우려가 가중되는 가운데 자산가격 급락에 따른 금융기관 건전성 악화와 부도 등은 국내 경제 디폴트를 좌우할 정도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LIG투자증권은 전국 아파트 값이 30% 하락할 경우 국내 은행이 시스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irror@fnnews.com 김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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