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돈줄 꽁꽁 얼었다] ③ 한은,전통적 정책 대응으론 안된다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2.10 17:23

수정 2008.12.10 17:23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불안이 증폭되던 지난 10월 27일 월요일 오전 8시 임시로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금통위원은 “금융시장 안정에 대한 중앙은행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지를 반영하듯 매월 둘째주 목요일이 아닌 월요일, 정상시 개최시간인 오전 9시가 아닌 8시에 열린 이날 회의에서 사상 최대폭인 0.75%포인트 금리를 내렸다.

이후 한은은 금리 인하뿐만 아니라 총액한도대출도 2조5000억원 증액했고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통안증권 중도환매 등을 통해 유동성도 계속 공급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와 신용경색이란 대외변수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감안해도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한은의 뜻은 시장에 먹혀들지 않았다. 기준금리는 10월 27일 이후 1%포인트 내렸지만 9일 현재 3년 만기 회사채(무보증·AA-) 금리는 오히려 0.94%포인트 올랐고 기업어음(CP·91일물) 금리도 0.09%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기준금리→시장금리→장기금리’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통화정책 수단 안 먹혀

한은의 통화정책 수단은 3가지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를 통한 공개시작조작, 지급준비제도, 총액한도대출 등을 포함하는 대출제도다.

한은은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을 치유하기 위해 3가지 정책을 모두 사용했다. 자산건전성과 자본확대 필요성이 제기된 은행권에 RP매매 대상증권에 은행채 등을 포함시키고 RP매입 등을 통해 은행, 증권업계에 9조5000억원을 공급했다. 지급준비제도도 은행 예금에 대한 지급준비금 비율(지준율)을 내리진 않았지만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로 5000억원을 예금은행에 내 줬다. 중소기업 지원자금인 총액한도대출도 이미 시행했고 금리도 내렸다.

한은 관계자는 “선제적이었느냐 아니면 규모가 적정했느냐 여부는 추후에 판명이 나겠지만 한은이 사용할 수 있는 통화정책 수단은 거의 다 썼다”고 말했다.

■전통적 수준서 벗어나야

통화정책의 수단이 시장에서 무시당하면서 한은 금통위 내부에서도 기존의 정책수단으로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제기됐다. 27일 회의 당시 한 금통위원은 “(현 상황은) 통상적 상황이 아닌 점을 감안할 때 과거의 전통적인 수준과 다른 비상적인 정책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당시 1%포인트 금리 인하를 제기했다.

한은 외부에서도 이 같은 의견은 나온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최근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바빠 죽겠는데 한가한 정상시기의 제도와 정책에 매달리지 말라”며 “보다 과감한 정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이 이날 내년 세계경제성장률을 사상 처음으로 0%대인 0.9%로 전망했다. 수출비중이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으로선 치명적이다.

이에 따라 경기 침체가 가속화돼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에 빠져들기 전에 비상적인 정책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에서 먹혀들지 않는 ‘금리인하’를 넘어선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리를 내리고 통화량을 늘려도 소비, 투자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현재 1년 이내 단기로 한정돼 있는 한은의 직접적인 유동성 공급(은행채 등의 RP 매입 등) 시한을 1년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 시중은행의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한 조처다.
이렇게 되면 은행들은 한은에서 사실상 장기대출을 받아 이 돈을 기업, 가계로 흐르게 할 수 있어 급격한 경기침체는 막을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도 금리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면서 검토하고 있는 방안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한결같이 통화정책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서는 재정확대를 통해 적극적인 경기부양이 한시 바삐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mirror@fnnews.com 김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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