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은행,20년 단골은 뒷전 고액 손님이 최고

김주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0.13 17:52

수정 2011.10.13 17:52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사회적 기업에 근무하는 L씨(47)는 최근 전세가격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이사를 결심했다. 부족한 전세자금 1억원은 대출을 받기로 했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20년 동안 주거래은행으로 거래해온 농협. L씨는 농협에 급여이체통장은 물론 적금과 보험도 가입해 있다. 기본으로 사용하는 신용카드도 농협카드다. 상담 결과 1억원 빌리는 데 대출이자는 5.8%가 적용됐다. L씨는 '혹시' 하는 생각에 옆에 있던 우리은행 창구를 찾았다.
아무런 거래가 없어 상담이나 한번 받아보자고 생각한 것. 1억원 대출받는 데 금리는 5.5%였다. 오랜 기간 믿고 거래하던 주거래은행보다 대출금리가 낮았던 것.

'이 은행 저 은행 거래하지 말고 한 은행과 거래하라'는 말은 요즘 금융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필수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재테크 전문가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라 이젠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실제로 은행이 주거래고객에게 주는 혜택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천대받는 '주거래고객'

13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고객등급을 은행실적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등급이 높을수록 각종 수수료 면제 등 혜택이 넓어진다. 오랜 기간 거래해 온 '주거래고객'이라 할지라도 실적이 좋지 않으면, 즉 '우수고객'에 들지 않으면 혜택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시중은행들은 직전 3개월간 거래실적을 평가해 분기별로 주거래 고객등급을 새롭게 선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판에 오랜 기간 거래가 의미 있을 리 없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4대 시중은행 중 '주거래고객 등급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신한은행이 그나마 유일한 형편이다. 신한은행은 탑스클럽(Tops Club)제도를 통해 주거래고객을 4단계로 분류한다. 거래 기간을 비롯해 예금과 대출금 등 실적을 기초로 약 207만명을 '주거래고객(탑스클럽)'으로 분류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4단계, 우리·하나은행도 5단계로 고객등급을 분류한다. 그러나 이들 은행은 주거래고객을 별도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전체 고객을 대상으로 단순히 거래실적에 따라 고객등급을 차등화해 혜택을 주는 개념이다. 오랫동안 거래한 '소액단골' 고객은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주거래고객이 아니라도 거래규모만 크면 최우수등급으로 분류돼 칙사 대접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소액 단골고객은 안중에 없는 셈.

신한은행 관계자는 "보통 분기별로 우수고객에 대한 등급을 조정하는데 일부 은행들은 전월 실적을 기준으로 매월 등급을 분류하는 곳도 있다"며 "수익을 내야 하는 은행 입장에선 오랜 기간 거래를 해왔다고 해서 거래규모가 작은데도 무조건 우수고객으로 분류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우수고객 혜택의 핵심은 '수수료 면제'

그렇다면 우수고객이 되면 혜택은 얼마나 클까. 느낄 수 있는 혜택은 수수료 면제 정도다. 대부분 은행들은 창구수수료, 현금자동화기기(CD/ATM), 전자금융(인터넷, 폰뱅킹) 자기앞수표 발행, 제증명 발급, 대여금고, 납부자동이체 등 고객등급에 따라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 준다.

하지만 거래실적을 점수로 환산해 3개월마다 등급을 정하기 때문에 단기간 높은 점수를 적립하기가 쉽지 않다. 신한은행의 경우 최상위등급인 '프리미어 고객'이 되려면 2000점이 필요하다. 입출식 수신은 10만원당 3점, 가계대출은 100만원당 7점을 주는 식이다.

대부분 대출이 많은 고객일수록 높은 등급을 받게 되지만 혹여 상환을 하게 되면 점수는 사라진다. 특히 최근에는 가입조건에 따라 수수료 혜택을 주는 상품도 많아 굳이 점수를 따지 않더라도 상품만 잘 고르면 각종 수수료 면제가 가능하다.
예금이나 대출에서는 더욱 혜택이 적다. 경기상황에 따라 금리수준이 결정되는 데다 대출의 경우 신용도에 대한 평가가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주거래고객이라고 낮은 금리를 주지는 않는 구조다.


전직 은행원인 K씨는 "주거래고객이라고 해도 거래규모가 크지 않으면 혜택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특히 요즘에는 상품에 따라 다양한 수수료 혜택을 주기 때문에 상품만 잘 고르면 우수고객들과 동일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밝혔다.

/toadk@fnnews.com김주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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