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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단 한사람에게 농락당한 국내은행 도쿄지점

김현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16 17:59

수정 2014.10.28 07:13

[현장취재] 단 한사람에게 농락당한 국내은행 도쿄지점


【 도쿄(일본)=김현희 기자】 국내 은행 도쿄지점의 부당대출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그 이면에 숨겨졌던 진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 모든 사건의 열쇠는 A은행 도쿄지점장들이 쥐고 있었다. 그들은 뉴카무(새로 정착하는 사람·New Come)들의 도쿄 모임인 '한인회'에 들어가 기반을 잡도록 도와주면서 정상대출이 점점 부당대출로 변했고 대출을 해준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관행까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당대출 구조에 우리·기업은행까지 휘말리게 만들었다. 이미 이 이야기는 2000년 초반부터 국내 은행 도쿄지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는 게 현지 지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국내 은행 도쿄지점과 브로커들 사이에 있었다는 이른바 '리베이트'는 없었다.

당시 브로커들은 부동산업자로 매물을 소개해 주거나 대출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었다. 부당 리베이트 관행은 A은행 도쿄지점장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특히 그중 B씨는 이번 사건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브로커'였다.

A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을 상환하도록 요구한 후 그 대출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은행이나 기업은행 도쿄지점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대출알선대금으로 '리베이트'를 뉴카무들에게 받았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는 B씨가 브로커였던 셈이다.

B씨는 이렇게 한도 초과된 대출을 상환하도록 하면서 A은행 도쿄지점의 대출한도 초과분을 없애왔던 것이다. 그 대신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은 이를 알지 못한 채 돈을 빌려주면서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 구조가 됐다.

■신주쿠 '미니버블' 주도

B씨는 1980년 후반에 들어온 동포 신진세력, 즉 뉴카무들을 공략했다. 이미 토착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1·2세대(일제강점기 전후로 일본에 정착한 동포)들은 자수성가한 후 대출이 필요없을 정도로 현금부자로 정착했지만 뉴카무들은 그러지 못했다.

1·2세대 동포들은 민단을 구성하고 뉴카무들에게 함께할 것을 요청했지만 뉴카무들은 '한인회'라는 별도의 모임을 조성했다. 민단과 한인회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하다. 이 틈을 지점장들이 파고든 것이다.

지점장들은 일단 뉴카무들과 접촉 후 일본 도쿄 신주쿠 지역에 건물이나 상가를 사도록 권유했다. 당시 신주쿠 지역의 건물이나 상가는 평균 3억~5억엔 안팎이었다. 물론 일본은행(0.7%)보다는 높지만 대부업체(20%)보다 아주 낮은 금리(3~5%)로 최대 3억엔의 대출한도를 제시한 것이다. 뉴카무들에게는 B씨가 '보답(온가에시)의 대상'이 됐다. 2006년에 산 건물이 한류 붐 등으로 최고 9억~10억엔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단 소속의 동포들에게도 접근했지만 민단 소속의 동포들은 들은 척도 안했다고 한다. 당시 동포들을 상대했던 한 도쿄지점장은 "동포들은 이미 1990년대의 일본 버블 붕괴를 체험했기 때문에 단기간에 가격이 오르는 금융상품이나 건물은 쳐다보지 않는다. 버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포들 사이에서도 신주쿠 지역은 '미니버블'로 인식될 정도로 우려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버블을 만든 것은 A은행 지점장들이었다"고 전했다. 뉴카무들끼리 건물을 사고팔았기 때문에 호가가 점점 치솟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점장들은 부동산업자들과도 손을 잡았다. 뉴카무 등에게 수익률 좋은 부동산을 알선하면서 대출을 자연스럽게 A은행 도쿄지점으로 유인해야 했고, 부동산업자들에게 받은 리베이트도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시중은행 도쿄지점 주재원은 "이들 3개 은행을 주물럭거린 부동산업자가 있다. 지점장들은 이 사람에게 꼼짝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동산업자들과 B씨가 이번 사건에서 일컬어지는 진정한 '브로커'"라고 말했다.

■버블붕괴로 우리·기업 부실 커져

B씨는 A은행의 한도초과 대출을 숨기기 위해 다른 국내 은행의 도쿄지점을 활용하기에 이른다. 일단 뉴카무들에게 대출 일부, 즉 한도 초과분만큼 상환할 것을 요구한 후 다른 은행(우리·기업은행 등)을 알선해주는 것이었다.

대출 3억엔을 예로 들면 30% 정도, 즉 1억엔 정도를 상환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B씨는 "내가 아주 친하고 믿는 형님 또는 아우"라는 핑계로 우리·기업은행에 접근했다. A은행의 대출 상황을 알지 못한 우리·기업은행은 B씨의 말을 믿고 뉴카무들에게 대출을 해줬다. 이 대출은 A은행의 대출상환금으로 활용됐다. 마치 채권단의 신규자금이 기업의 회사채 갚는 것으로 활용된 것처럼.

시중은행 도쿄지점장은 "당시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도쿄지점장들은 나중에야 B씨에게 속은 것을 알고 분개했다. 대출을 상환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대출자가 갚을 능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부실대출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대출연장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한 지점장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 후 한류 붐이 정체되면서 신주쿠 한인타운 건물의 값은 폭락하기에 이른다. 현재는 권리금 주고 들어간 세입자들은 빠져나오지도 못한다. 건물이나 상가 주인이 권리금을 줄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 건물주는 "지난 2011년 3·11 대지진 당시 도망한 세입자들도 상당하다. 망가진 건물을 수리해야 하고 월세도 받지 못하니 건물 주인들도 재무구조가 계속 부실해진 것이다.

3·11 대지진도 뉴카무의 버블붕괴에 한몫했다"고 말했다. maru1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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