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다시 제조업을 말하다] (中) 재탕·삼탕 정책.. 경쟁국 제조업 혁명 속 한국만 허우적

김병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28 17:25

수정 2014.10.24 20:58

[다시 제조업을 말하다] (中) 재탕·삼탕 정책.. 경쟁국 제조업 혁명 속 한국만 허우적

"재주 부리는 곰만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돈을 챙기는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제조업 지원 정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제조업 재도약을 위한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제안한 것이 무색할 정도의 혹독한 평가다. 1인 제조시대 도래 등 제조업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이 근원적 문제해결보다는 단기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매뉴얼을 그대로 베껴 쓴 재탕·삼탕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가 제조업 혁신을 유인할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하지 못한 채 양적 투입과 선진국 추격 등 기존 전략으로 글로벌 제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란 요원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제조업을 강화·육성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전과 실행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제조업, 판이 바뀌고 있다'

지난 5월 20대 미국 청년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하나가 세계를 흔들었다. 권총을 만들어 쏴 보는 실험 동영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손에 쥔 권총의 출처가 '프린터'라는 점이다. 모든 부품을 3차원 프린터로 찍어낸 이 청년은 권총을 조립해 격발하는 장면까지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고, 이어 설계도까지 인터넷에 올렸다.

어떤 물건이든 공장을 찾지 않고 스스로 '제작자'가 될 수 있는 1인 제조 세상의 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발명가는 기업에 기대지 않아도 제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이미 시장엔 잉크 대신 플라스틱을 분사해 물건을 찍어내는 3차원 프린터가 줄줄이 출시돼 있다. 또 재료를 설계도대로 깎아주는 레이저 커터도 있고, 물체를 현실과 최대한 가까운 이미지로 컴퓨터에 옮겨주는 3차원 스캐너도 나와 있다.

'메이커스(Makers)'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은 이를 가리켜 "초기 산업혁명과 비슷한 일이 오늘날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롱테일 법칙'의 창시자로 유명한 그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제조의 디지털화'에 주목하고 새로운 산업혁명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표적 사례가 세계 최초 오픈소스 자동차 제조사 '로컬모터스'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이 공장은 연간 자동차를 2000대 이하로만 생산한다. 직원 수도 4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생산된 자동차 한 대의 평균 가격은 7만달러(약 7700만원)에 달한다.

이 회사는 소비자와 전문가가 모인 커뮤니티에서 자동차를 설계한다. 외부 전문가와 일반 대중이 협력하는 '크라우드 소싱' 방식이다. 부품은 세계 각지에서 조달하고, 차를 사는 고객이 조립에 직접 참여한다. 40명의 직원만으로도 이 기업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다.

■경쟁국에 밀리고 있는 한국

제조업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지원 정책에서도 미국·독일·일본 등에 비해 밀리고 있는 양상이다.

우선 제조업체들한테 혜택이 집중됐던 세제 지원이라는 한국의 장점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수준에 도달했다. 최근에는 고기술 제조업종의 법인세 비중이 증대하고 있다.

더구나 OECD 국가들은 기업 연구개발(R&D)에 크게 기여하는 R&D 조세 지원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오히려 비중을 축소하는 실정이다. 미국과 일본은 법인세율 인하와 함께 첨단 제조 및 설비에 대한 세액 공제 등 세제 지원을 추진 중이며 독일은 이미 2007년에 법인세율을 39%에서 29%대로 인하했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도 문제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최고 수준이나 기술수입금액을 기술수출금액으로 나눈 기술무역수지배율은 1 이하에 머물고 있어 핵심기술 해외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인력 수급에도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한국의 숙련 인력 활용도가 다소 개선되고 있지만 2001년 이후 주요국 대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또 인재 유출이 많아 인적자원을 활용하는 면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경쟁국과 비교해 세금, 기술, 인력 등의 측면에서 제조업 혁신을 유인하고 촉진할 기반 구축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제조업 혁신 3.0 전략' 겉만 요란

최근 정부는 "2020년까지 지능화.최적화한 스마트 공장 1만개를 만드는 제조업 혁신전략을 구사하겠다"며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발표했다. 패러다임 혁신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해 창조경제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표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개념에 대한 설명과 세부 실천방안이 나와 있지 않다. 속 빈 강정인 셈이다. 독일이 우리 정책과 비슷한 '인더스트리 4.0'을 공개하면서 정책적 목표와 실천 방안 등에 대해 명확히 제시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더구나 새로 발표된 정책도 기존 정책과 다른 점이 없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올해 정부예산 중 창조경제 사업을 분석한 결과 이 중 33%가 이명박정부의 '녹색사업'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김용열 홍익대학교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문제는 제조업 부진을 해소하고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정책적 대응이 있느냐는 것"이라며 "정부의 최근 정책을 들여다보면 기존 주력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직접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ironman17@fnnews.com 김병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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