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이병철 회장 탄생 100년 ‘호암을 기리다’] (3) 호암의 기업가 정신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1.17 16:23

수정 2010.01.17 16:23

“제 사무실에 ‘경청(傾聽)’이란 글귀가 담긴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지난 2007년 9월 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2007’ 행사장에서 기자와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당시 전무)이 들려준 ‘경청’에 대한 일성이다.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인 이 부사장은 ‘경청’을 대를 물려 내려온 가훈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그대로 담아냈다. 이 부사장은 이날 ‘IFA2007’에서 삼성전자 말단 직원에서 고위 임원의 설명 한 마디 한 마디에 귀기울였다. 이 부사장은 빈틈없는 업무 일정 속에서도 1시간여 동안 쏟아진 낯선 기자의 질문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았다. 이 부사장은 얼굴에 싫은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3년이 흐른 2010년 1월 7일(현지시간) 이재용 부사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10’의 삼성전자 전시장을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찾았다. 이 부사장은 이날 ‘CES2010’ 개막 시간인 오전 10시 전부터 삼성전자 전시부스에 머무르면서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윤부근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 등 삼성전자 경영진과 현장 회의를 주도하면서 의견을 교환했다. 이 부사장은 많이 들었다. 불청객인 기자가 질문 공세를 쏟아내도 소홀함 없이 경청한 뒤 진지하게 응대했다.

이렇게 이 부사장이 보여준 두번의 행보에서 호암이 가훈으로 물려준 ‘경청’이 무엇인가를 쉽게 엿볼 수 있다.

본래 ‘경청’을 통한 소통은 호암의 핵심 경영철학이다. 호암은 생전에 “어린이의 말이라도 경청하라”면서 경청을 최우선 경영방식이자 삶의 지표로 삼았다.

호암은 아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도 “사람을 얻으려면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지혜로운 유훈을 남겼다.

삼성을 작은 ‘씨앗’에서 아름드리 ‘거목’으로 키워낸 호암의 리더십은 일명 ‘경청득심(傾聽得心)’ 또는 ‘이청득심(以聽得心)’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이는 ‘기울여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라는 뜻.

‘마음을 얻는 지혜, 경청’이라는 책에서 제시하는 경청의 방법은 상대방의 생각을 받아들여 ‘공감하는 것’, 상대를 완전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말을 ‘절제하는 것’,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경청의 리더십’은 호암이 가장 존경한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일화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른 첫날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더불어 하는 것”이라며 “신하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런 호암의 ‘경청 리더십’은 아들 이건희 전 회장에게 여과 없이 대물림됐다. 이건희 전 회장은 ‘경청’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탄생한 ‘신경영’을 앞세워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등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결국 이 전 회장은 삼성그룹을 연매출 200조원에 육박하는 일류 기업으로 키워내는 경영 능력을 발휘해 ‘존경받는 경영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건희 전 회장의 ‘진화된 경청 리더십’은 다시 삼성의 3세 경영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에게서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다.

‘호암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10년 새해 벽두부터 초일류 기업을 향해 창조적 도전의 불꽃을 태우고 있는 삼성의 앞날이 밝은 이유다.

/hwyang@fnnews.com 양형욱기자


fnSurvey